국선전담 변호사의 임기를 마치고 개업을 한 뒤, 내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영장실질심사 절차에서 변론하는 것이었다.
영장실질심사는 피의자에게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검사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판사가 직접 피의자를 심문해 구속 필요성을 판단하는 절차다.
발부율은 약 80%. 한 번 영장이 발부되면 피의자는 수개월을 구치소에서 보내게 된다.
국선전담 변호사는 사건이 재판 단계로 넘어온 뒤부터 선임된다.
따라서 재판 단계 이전인 수사 단계에서 진행되는 영장실질심사에는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개업 후 처음 마주한 그 절차는 낯설고도 무거웠다.
영장실질심사 기일은 보통 하루 이틀 전에 통지된다.
준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더 난감한 것은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가 무엇인지, 불리한 증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변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수사기록은 공개되지 않는다.
수사기관만이 무엇을 쥐고 있는지 안다.
변호인은 오직 피의자의 말에 의존해 법정에 선다.
심리는 길어야 20~30분.
그러나 결정은 그날 저녁 내려진다.
그 몇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변호사는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하루를 버틴다.
석방일까, 구속일까.
혹시 내가 볼 수 없었던 증거 중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꾸지는 않을까.
그날 내가 선임한 사건의 피의자는 성범죄로 입건된 20대 청년이었다.
범죄사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만큼 추악했다. 그는 중학교 여학생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피해자에게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자신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만약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유죄인데다가 끝까지 부인했기 떄문에 형은 더 무거워질 수 있었다.
최소 징역 5년 이상이 예상되는 중한 범죄였다.
변호인은 모른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가 어떤 진술을 했는지, 경찰이 어떤 증거가 확보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피의자가 나에게 해준 말과 상식, 그리고 범죄사실 간의 모순만을 붙잡고 법정에 섰다.
수사 형사가 법정에 들어오려 했으나 판사의 제지로 입정하지 못했다.
곧 심리가 시작됐다.
“피의자는 이 사건 범죄사실을 모두 부인합니다.”
내 말이 법정에 울리자마자 판사가 물었다.
“변호인, 이 사건이 얼마나 중한 범죄인지 아시지요? 그런데도 부인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나는 긴장을 숨기기 위해 최대한 차분한 어조를 유지했다.
판사가 다시 물었다.
“피의자의 주장이 맞다면, 피해자는 피고인을 중한 죄로 무고한 셈입니다. 피해자가 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십니까?”
그 질문 하나에 피의자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범죄사실이 수사 초기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되어 있던 것과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되어 있던 범죄사실이 삭제되고 새로운 범죄사실이 기재된 이유가 밝혀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범죄사실의 시간적 모순과 범죄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변경된 점을 하나하나 짚었다.
법정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 눈빛 속에서 나는 오직 기록과 문장으로 싸웠다.
마지막으로 말했다.
“재판장님, 제발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영장실질심사 청구서에 기록된 범죄사실의 일시와 행태가 다르다는 점을 제발 고려해 주십시오. 즉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어 기소가 되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제발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영장을 기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날,
평생 법정에서 꺼내본 적 없던 단어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제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설령 그것이 비굴해 보일지라도
나는 그를 믿기로 했다.
내가 볼 수 있는 몇 줄의 범죄사실만으로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싸움이었지만, 변호인은 믿는 사람의 편에 서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날, 피가 마르는 10여 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는 성범죄 사건으로는 드물게 영장기각 결정문을 받았다.
짧은 심리였다.
그러나 그 30분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긴 30분이 될 수 있다.
영장실질심사는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구속할 것인지 결정하는 자리라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