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서은실이 아닌 ‘서주영’으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님처럼 내 이름에도 ‘실’이 들어가 있다. 금의환향의 금이든 금은동의 금이든, 금실로 해주시지 왜 은실이었을까.
날카롭고 냉랭한 법정에서 “서은실 변호사 출석했습니다”라고 내 이름을 말할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변호사라는 직함 뒤에 붙기엔 이름이 너무 순둥하고 어수룩해 보였다. 그 이름이 부끄러워 말을 최대한 빨리 내뱉고 도망치듯 자리에 앉곤 했다.
작명가들이 말하듯 개명을 하면 인생의 흐름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쉰을 앞두고 되돌아본 내 삶이, 버텨온 지독한 노력에 비해 ‘성취’가 평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 고단한 인생의 경로를 개명이라는 쉬운 절차를 통해 한번쯤 쉽게 가보고 싶었다.
은은한 힘이 느껴지는 ‘주영’이라는 이름을 연습장에 써보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무게감을 가진 배우 차주영처럼, 혹은 거침없던 정주영 회장처럼, 그 이름 뒤에 숨으면 내 삶도 조금은 더 단단해질 것 같았다.
로스쿨 동기에게 개명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굳이 왜?”
그 질문 앞에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한 부러움 들을 떠올렸다. 로스쿨 졸업 즈음, 취업이 되지 않아 막막할 때나 법원이라는 낯선 곳에서 우왕좌왕할 때, 조언해 줄 법조인 부모님이 있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진로가 보이지 않을 때 언제든 길을 일러줄 부모가 있고, 누구의 아들, 딸, 혹은 누구의 손자이라며 알아봐 주는 그 든든한 배경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은실’이에게는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입주 시터를 두고 일과 사회생활을 출산 전처럼 유지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는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손주 하나 못 보겠냐는 부모님의 의지가 컸다.
하지만 그 선택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 국선전담변호사로 복귀한 뒤에도 나는 모유 수유를 고집했다. 심근경색으로 응급수술을 받으신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보며 매일 하루 10개가 넘는 젖병 설거지까지 버티실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첫아이 출산 3일 전, 어깨가 아프다며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셨던 엄마는 그 길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 수술대에 올랐다. “30분만 늦었어도 응급실이 아닌 영안실로 가셨을 겁니다.” 의사의 그 말은 지금까지도 내 심장에 박혀 있다.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엄마였지만, 온몸에는 수술 후유증이 깊게 남아있었다.
낮에는 법정에서 치열하게 변론하고, 밤에는 집으로 달려와 유축기를 소독했다. 밤새 수유를 하며 30대 후반이라는 황금기를 전쟁터에서 보냈다. 부족한 잠 때문에 법정에서 찰나의 말실수를 할 때면, 재판장의 냉랭한 시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주 시터에게 아이를 맡기고 흐트러짐 없는 일상을 유지하는 동료들을 볼 때면, 모유 냄새가 밴 옷을 입고 마감에 쫓기는 내 삶이 한없이 비루해 보였다. 사회생활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고 내 삶은 일과 아이들로 좁혀졌다. 내 존재가 그저 거대한 수유 기계가 된 것만 같은 지독한 허무감 깊은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 고단한 터널을 지나 50을 앞둔 지금, 나는 어린 초등학 아이들과 매일 아웅다웅하는 평범한 엄마이자 변호사로 서 있다. 문득 이 모든 고생의 결과가 결국 '지금 이 모습'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나답지 않게 개명이라는 탈출구를 꿈꿨던 것이다. 이름을 바꾸면 인생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질까 봐.
하지만 결국 나는 개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
40년 넘게 불려 온 ‘서은실’이라는 이름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내 이름 석 자에는 엄마가 누워계시던 응급실 앞에서의 공포, 유축기를 돌리던 밤의 눈물, 그리고 아픈 몸으로 갓난아기를 품에 안아주시던 엄마의 절박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비록 잊고 싶은 고단함이라 할지라도, 그 고단함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빚어낸 시간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화려한 금실은 아니어도, 쉼 없이 닦아내야 빛이 나는 은실(銀實)로 나는 내 삶을 충분히 귀하게 채워왔다. 거울 속에 비친, 조금은 지쳐 보이지만 단단한 눈을 가진 나에게 나직이 말을 건네본다.
“은실아, 참 고생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