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야 한다. 아이를 비난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을
소파 위에 양말이 널브러져 있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또 저기 올려놨어?”
내 입에서는 언제나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런데 P.E.T. 부모교육 수업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쇼파 위에 양말이 있어서 앉을 수가 없네. 보기에도 좀 불편해. 치워줄래?”
똑같은 상황인데, 말이 달라지면 공기의 온도가 달라진다.
비난이 빠지자 아이의 표정이 처음으로 방어에서 이해로 바뀌었다.
그 수업을 들으며 문득 떠올랐다.
내가 매일 서 있던 형사법정의 언어도 바로 그랬다는 걸.
공소장은 피고인의 범죄사실을 기록하지만,
거기에는 “배은망덕하게도”, “천륜을 저버리고” 같은 감정적 단어가 없다.
그저 이렇게 적을 뿐이다.
“피고인은 0000년 00월 00일 00시경, 안방에서 잠자고 있던 어머니 피해자 000을 흉기로 살해하였다.”
그 문장에는 분노도 혐오도 없다.
사실만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중죄를 저지른 피고인을 위한 서면에서
그렇게 감정 없이 사실만 적어내려갔으면서,
정작 내 아이에게는 “왜 그랬니”, “또 그랬어?” 하며
끝없이 비난의 언어를 화살처럼 쏘아 붙였다.
그 순간 마음이 움찔했다.
아이의 잘못이 아무리 커도,
그건 죄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었는데.
나는 아이를 가르치지 않고 마음에 상처만 남기고 있었다.
P.E.T.는 말한다.
'비난이 아닌 사실을 말하고
감정이 아닌 바람을 표현하라.”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아이의 행동을 ‘사진찍듯’ 보기로 했다.
잘못된 행동으로 단정짓기 보다,
그저 **“이 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로 남겨두기로.
공소장이 피고인을 정죄하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문서이듯,
부모의 말도 아이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대화를 열기 위한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
왜 나는 내 아이에게 양말하나로 그토록 가혹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