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시간이 끝나고,
삶이 시작되었다

그때의 나에게 이제서야 건네는 말

요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처럼 살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한때 나는 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미간 한가운데 깊고 어두운 주름이 자리를 잡았고,
입가에는 늘 긴장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나는 얼마나 가혹했던가.

날카로운 말, 조급한 숨,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는 나를 한 번도 품어준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주 조용한 저녁이었을까,
문득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늘 불안했고,
늘 더 잘해야 했고,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속삭였다.
“너 정말 애썼어.
그때 너는 혼자였잖아.
그렇게까지 애썼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나를 용서하고 있었다.
나를 다시 키우고 있었다.

이제 나는 평가로 하루를 재지 않는다.
누가 앞섰는지, 누가 더 빛나는지,
그런 일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대신 내 하루에는
작고 선명한 순간들이 쌓인다.

아이 머리카락에서 나는 햇빛 냄새.
잠들기 전 부드럽게 스며드는 이마의 온기.
런닝머신 위에서 나와 단둘이 마주하는 숨.
책장을 넘기며 내 안에서 천천히 말이 자라는 시간.

나는 이제야 살아 있는 시간을 살고 있다.



서른 해가 넘는 터널을 걸어
드디어 내 앞에 열리는 밝은 장소.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곳.
누구도 나를 재지 않는 곳.
그곳에서 나는 나의 속도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행의 첫 페이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곁에 있었던
책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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