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엄마의 두 번째 변론글
5년 넘게 다니던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던 날, 나는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조직의 일원으로 사는 삶이 주는 답답함, 정해진 틀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스스로 판단하고 논리를 펼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을 갈구했죠. 그 간절한 선택이 저를 이끈 곳은 바로 '법'이었습니다.
로스쿨 1기로 입학해, 법조문을 분석하고 판례의 사실관계와 판단의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밤을 새운 날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 지독한 노력의 끝에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이 되었고, 능력 있는 변호사로 성장하는 인생의 2막이 화려하게 열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보이지 않는 견고한 학벌의 벽 앞에서 내가 쌓아 올린 논리와 열정은 너무나 쉽게 무력해졌고, 기록의 한 글자 차이로 진실이 뒤바뀌는 걸 보며 법의 냉정함을 체감했습니다. 사람들의 편견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저는 그 사이에서 법이 가진 차갑고도 분명한 한계를 배웠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매일 판례와 이유식, 변론과 동화를 오가며 제 안의 변호사와 엄마를 동시에 살리려 애썼습니다. 때로는 그 두 사람이 격렬하게 싸웠고, 어떤 날에는 조용히 손을 맞잡았습니다.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것이 두려워, 잠시라도 기록을 놓으면 제가 법조인이 아닌, 그저 아이의 엄마로만 남을 것 같아 늘 조급한 마음으로 법률 서적을 붙잡았습니다.
어린아이들과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법정의 날카로운 기억은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그 빈자리는 삶의 생생한 '사람 사는' 경험으로 채워져 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잠든 두 아이 곁에서 그들의 작고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제 두 팔이 이 아이들의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베개가 되어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온전히 이해했습니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숭고한 엄마의 모습이야말로 더 진짜 '나'라는 것을.
세 살 아이가 장난감을 나누다 "엄마, 이건 공평하지 않아!" 하고 외쳤을 때, 저는 문득 법정에서 듣던 '형평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아이는 법률가인 판사보다 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정의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와 부딪히고, 웃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그 일상의 반복 속에서 저는 오히려 '법'의 본질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법은 차가운 논리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격렬한 협상과 이해의 결과라는 것을 말이죠. 그렇게 저는 조금씩, '사건' 자체보다 '삶의 온도'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판결문 대신 삶의 다채로운 '문장'들을 읽습니다. 날카로운 증거 분석보다는 사람의 복잡한 '표정'을, 엄밀한 법적 '논리'보다는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봅니다. 물리적인 법정은 멀어졌지만, 그 덕분에 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저의 두 번째 준비서면입니다. 법정은 멀어졌지만, 저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변론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삶의 따뜻한 온도와 사람의 진정한 마음을 향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