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언어와 법의 언어 사이에서

– 변호사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난 그 손님에게 접시를 던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유죄인가요?”


나는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은 1심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부인하셨나요?
그리고 선생님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인을 신청하셨나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설마,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라는 당황이 서려 있었다.

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선생님은 1심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모두 동의하셨습니다.
그래서 재판부는 증인을 부를 수 없었고,
검사가 낸 자료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왜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증인으로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낮고 힘없이 말했다.

“저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냥… 무죄가 나올 줄 알았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판사는 마음을 듣지 않습니다.
판사는 감정이 아니라 제출된 증거로 판단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말해주지 않습니다.
내 억울함도 형태를 갖춰야 비로소 눈앞에 존재하게 됩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억울함과 피로가 겹쳐 있었다.
그 마음을 안다. 그러나 판사는 그런 마음을 읽지 않는다.


법정은 ‘전쟁터’다

나는 종종 재판을 전쟁에 비유한다.

재판은
상대의 주장과 증거에 맞서
내 주장과 증거로 응수하는 전략 싸움이다.


판사는 전쟁터 안에서 싸우지 않는다.
전쟁터 밖에서
양측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까지 확보했는지를 관찰한다.

그리고 우세한 쪽의 손을 들어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구조다.
설명이나 감정이 아니라 증거다.
감정은 마음을 울리지만, 증거만이 법을 움직인다.

그래서 변호사는
상대의 공격에 맞서 방어하고
필요할 때는 허를 찌르는 단 한 번의 증거를 준비하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항소심은 마지막 전쟁 준비다

다행히 아직 항소심의 기회가 남아 있다.
이번에는 증인을 부르고,
당시 상황을 사실과 맥락의 구조 안에서 다시 세울 것이다.

그의 억울함이
이번에는 말이 아니라, 증거로 말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변호사가 사람을 대신해 말해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변호사는 마음을 ‘보여질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사람이다.
현실의 언어를, 법이 판단할 수 있는 구조로 정리하는 사람이다.


억울함은 그냥 두면 소리일 뿐이다.
소리를 말로,
말을 사실로,
사실을 증거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
나는 그 일을 한다.


법은 차갑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