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서 변호인은 무죄를 다투지만,
유죄가 분명한 사건에서는 역할이 달라진다.
그때부터 변론의 방향은
‘무죄’가 아니라 ‘양형’이 된다.
흔히 유무죄 판단보다 더 어려운 것이
양형, 즉 적절한 형을 정하는 일이라고 한다.
같은 폭행사건이라도
어떤 사건은 벌금으로,
어떤 사건은 징역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변호인은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는지,
피해자와 합의했는지,
피해의 정도는 어떠한지,
그리고 피고인의 삶에 참작할 사정이 있는지를
서면에 담아낸다.
그 과정에서
나는 피고인의 인생을 듣게 된다.
얼마 전 만난 한 피고인은
상담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맞고 자랐습니다.”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그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폭행이나 상해, 업무방해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의 불우한 환경을 이야기한다.
폭력적인 부모, 가난,
이룰 수 없었던 꿈,
그리고 그 가난에서 다시 시작된 폭력.
그 굴레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다시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물론 법정에서
그 모든 것을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불우한 환경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굴레를 벗어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는 그 질문을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게 되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우울증을 앓고 계셨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 역시 웃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혼 후,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밝게 웃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나도
아버지의 굴레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아무도 모르게
나에게 스며든 것이었다.
나는 아직
그 굴레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서툴고,
웃는 일조차 의식해야 가능한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나는 그 굴레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알지 못할 때는
그것이 나의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그래서 나는 선택하려 한다.
아버지에게서 이어진 어떤 것들은 내려놓고,
내 아이들에게는
다른 것을 남겨주기로.
나는 가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멈칫할 때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표정이 굳어 있는 내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배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그래서 나는 요즘
조금 어색하더라도
일부러 더 웃으려고 한다.
법정에서 나는
타인의 삶을 정리해 제출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가장 어렵고 오래 걸리는 양형은
나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재판은
내 안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다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