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만 2세가 훌쩍 넘어 올해 봄 학기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하고 있다. 입학 전 어린이집에서 나눠준 두꺼운 안내 책자를 설렁설렁 읽어 내려가다 보니 첫째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은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단다.
통합교육? 처음 들어본 낯선 말에 눈길이 멈춘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보니 장애통합, 연령통합, 즉 아이들을 다 함께 모아 보육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선생님은 애칭을 부르며 서로에게 반말을 한다는 것이다.
좋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한 편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나이가 어린 영아에게 손이 많이 가면 우리 아이는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우리 아이는 이미 존댓말을 잘 쓰는데, 어렵다는 존댓말을 애써 익숙하게 만들었는데, 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서 예의 없게 자라는 건 아닌지 의구심도 살짝 들었다.
첫째 아이가 배정된 반에는 청각에 장애가 있는 친구, 아빠가 외국인인 혼혈 친구가 있었다. 아이가 조금은 다른 친구들을 낯설어하며 거리를 두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그맣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아파서 우는 거니깐 잘 대해줘야 해"
그러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첫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 다니고 있다.반말이 주는 친근함 때문인지 엄마한테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라며 역할놀이를 하고, 조금은 다른 친구들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며 집에서도 그 친구들 이름을 자주 이야기한다.
특히 청각장애가 있는 친구가 자주 운다고, 선생님이 많이 안아준다고 이야기하는데, 최근 보청기 연습을 시작해서 더 울음이 잦아졌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터라 "잘 안 들리고 아파서 그런 거니깐 친구한테 잘 대해줘야 해"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아이의 미소가 햇살처럼 눈부시다
하루는 어린이집 친구들이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얼굴을 잘 모를 것 같아서 친구들 사진이 나와있는 명단 표를 보여줬다. 그러자 첫째가 청각장애가 있는 친구 사진을 가리키며 "왜 A는 여기에선 웃고 있어?"라고 말한다.
왜 우는지에 대해서만 답해왔는데 왜 웃냐는 질문은 뜻밖이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아파서 잘 운다고 했는데 그 사진 찍을 때는 잘 들려서 안 아파서 웃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평상시와 다른 갑작스러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당황해서 말을 못 잇고 있는 나에게 자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왜 사진에서는 웃고 있지? 어린이집에서는 우는데"라고 다시 한번 묻는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사진 속 A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환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사랑스러운 자식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을 A의 부모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아이에게 대답했다.
"A가 엄마, 아빠랑 같이 있어서 행복해서 그래. 너도 엄마랑 아빠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잖아"
편견 없는 아이의 시선으로
편견 없는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친구는 자신과 다르지 않았다. 태어난 지 30개월, 아이는 아직 차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다. 친구가 잘 들을 수 있는지, 잘 듣지 못하는지, 자기와 같은지, 다른지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아이는 친구의 존재 그 자체를 바라봤다. 그래서 친구가 왜 평소와 달리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A는 어린이집에서 귀가 잘 안 들려서 울었던 게 아니라 낯선 환경이 어색하고 불편해 울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첫째 아이도 어린이집 적응기간에 많이 불편해하고 짜증을 내고 울먹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울음의 원인을 "다름"에서 찾았던 것은 습관처럼 배어있는 편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름"이 모든 문제의 정답은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일상에 녹아있는 편견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작용하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 서양에 가면 우리가 외국인이듯, 그저 그 숫자가 적은 것일 뿐문제의 원인이 아닐 수 있다.
진정한 배움은 삶에서 나온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오감을 발달시켜야 한다며 다양한 문화센터 강좌를 수강하고, 동물들을 실제로 만져보며 교감하는 것이 좋다며 체험 중심 동물원에 가고, 정서발달을 위해 다양한 그림책을 읽어주지만, 결손가정, 다문화가정이 많이 사는 동네, 소득 수준이 낮은 동네는 학군이 안 좋다며 무시하거나 이사 가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쉽게 듣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평등, 양보, 배려, 공감, 조화에 대한 진정한 배움은 인위적인 체험활동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린이집 속 작은 사회
통합교육을 실시하는 어린이집 원아 구성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그러나 함께 어우러져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 마음속에 편견은 자라지 않았다.소수자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편견이라는 씨앗을 심은 건 어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통합교육에서 혹시나 우리 아이가 역차별을 받을까 봐, 자연과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흔한 특별활동 하나 하지 않는 어린이집 교육철학이 틀렸을까 봐, 놀이학교나 다른 어린이집을 검색하고 비교하며 잠시 우려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는 나보다 훨씬 투명하고 맑았고 강했다.
어린이집 속 작은 사회에서 같음과 다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편견 없는 어른으로 자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