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속에서 사는 사람이 무너지는 이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목사라는 직업은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물리적으로 성경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삶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름없이 무너진다.
학위도 속이고, 성폭행도 일삼고, 돈도 착복한다.
두려움과 욕망과 교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는 매한가지이다.
비단 요즘의 이야기도 아니다. 중세 시대에도 그랬고,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의 바리새인들도 그랬다.
목사도 사람일 뿐이다. 애초부터 인간과는 다른 존재라 생각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목사도 죄로 부터 자유롭지 않기는 당연하다.
다만 궁금한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의 노출도와 '죄로부터의 자유함' 사이의 상관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했던 한 목사님이 성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지켜 보면서 그 목사님의 잘못된 행태 보다도더 충격을 받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무력함이었다.
"아니.. 하루에도 새벽부터 밤까지 설교를 몇 번씩 하고, 매일 몇 시간씩 성경을 뒤지며 설교준비를 하는 저 사람도 저렇게 무너지는데.. 하루 15분 큐티 정도나 하는 내가 과연 안무너질 수 있을까? 나에게 구원이라는 것이 가능이나 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God means what he says. What he says goes. His powerful Word is sharp as a surgeon’s scalpel, cutting through everything, whether doubt or defense, laying us open to listen and obey. Nothing and no one is impervious to God’s Word. We can’t get away from it—no matter what.
(히브리서 4장 12-13절)
말씀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구절이다.
그런데 왜 그 목사님에게는 수술용 메스와 같이 날카로운 말씀이 통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것은 어떤 목사님을 겨냥한 글이 아니라, 나에 대한 글이다.
나 역시 기독교 문화가 깊은 뿌리를 박고 있던 가정 문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말씀안에서 자랐다.
나름 성경에 대해서는 지지 않을만큼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읽기도 묵상도 많이 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죄에게 지고 산다.
걱정과 근심, 두려움으로 부터 자유하지 못하며
욕심과 교만함, 분노로 부터도 자유하지 못하다.
사회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해 볼 때,
'그들이 더 낫다' 라는 생각을 매번 하곤 한다.
그들이 더 이웃을 사랑하는 것 같으며,
그들이 더 돈과 인정으로 부터 자유해 보이고,
사실 그들이 더 행복해 보인다.
왜 날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토록 곤고한 나를 이대로 놓아두는가.
말씀이 무력한 것인가 아니면 말씀이 나를 포기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나에게 한 선배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거야" 라고.
"그 목사님 이야기 할 게 뭐 있어? 다윗은 권력을 이용해 남의 아내와 간통하고 그 남편을 살인까지 했는데, 세상 그런 나쁜 놈이 어딨어"
"다윗의 그 장면만 스냅샷으로 보면 실패자이지만, 다윗의 전 인생을 놓고 보면 그 사건도 다윗을 다윗되게 빚어가는 인생의 중요한 소재이지. 그 목사님도 마찬가지야. 지금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전 인생을 볼 때 그를 어떻게 빚어가실지는 우리는 아무도 몰라"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어떻게 목사가 무너질 수 있을까?'
'어떻게 다윗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나는 여전히 이 모양 이 꼴 일까?'
모두 인간의 스냅샷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 생겨난 질문이었다.
하나님의 관점. 즉, 인생을 '전체'로 한번에 바라볼 때는 무의미한 질문일 수 있다.
실수한 일, 잘못한 일, 타인에게 피해를 준 일. 이 사회를 아프게 한 죄값은 분명 충분히 치루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이런 부끄러운 스냅샷들도 모두 모아서 나를 빚어가신다.
나는 그런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이 빚어가실 내 삶의 영원한 모습을 소망하며 다시 무릎을 털고 일어선다.
그리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내 수준에서' 하나님을, 이웃을 사랑하려고 한 걸음을 또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