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이유
청년이 된 어느날 생각을 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나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내 친구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별로 다른 게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할까? 왜 잘 살고 있어 보이는 그들에게 전도를 해야 할까?
아니, 오히려 그들이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나나 믿는 다는 친구들 보다 그들이 더 밝고, 공동체 생활에 더 희생적이었으며, 열정이 넘쳤다. 더 좋은 직업도 가지고, 돈도 더 많이 벌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더 매력적이었으며 더 상식적이고 세상에도 더 공헌하는 듯 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나는 항상 죄의식 속에 살았다. 기독교의 도덕기준은 너무나 높았고, 나는 매번 그것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에 지쳐갔다. 반면에 세상의 도덕기준(남들도 다 하면 해도 되는)을 가진 믿지 않는 친구들은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죄의식도 없어 보였다.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워 보였다.
당연히,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이거? 하나님 믿는게 더 손해 아니야?"
어떤 회사와 고용관계로 계약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상(Compensation)이다.
내가 회사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는 댓가로 무엇을 보상으로 받게 되는지를 명확히 인식해야 열심히 일할 동기를 얻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고용관계로 비유하는 것은 문제가 많지만,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한 사람들도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보상'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요점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믿기 시작하면 중간에 지쳐버릴 수 밖에 없다. 어쩌면 하나님께 분노하고 손가락질 하며 떠나버리는 많은 사람들도 이 점에 기인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도 열심히 갖다 바쳤는데 대학에 떨어졌다면?
교회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가족이 갑자기 암에 걸렸다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집사, 권사, 장로 활동에 그토록 매진했는데 잘되던 사업이 완전히 망해버렸다면?
고난 속에서 그 사람이 가진 '하나님의 보상(약속)'에 대한 이해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This is how much God loved the world: He gave his Son, his one and only Son. And this is why: so that no one need be destroyed; by believing in him, anyone can have a whole and lasting life.
(요한복은 3장 16절)
하나님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보상은 '영생(whole and lasting life)' 이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은 '의식주, 섹스, 건강, 돈, 명예'가 아니다. 이것들은 '영원하지 않은 지구에서의 삶'에서는 매우 요긴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나의 필요에 관심이 있으시다.
아이와 부모의 차이가 무엇인가. 어린 아이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없다. 당연히 눈 앞의 것만 요구한다. 하지만, 부모는 그 아이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고 필요한 것을 준비한다.
인간은 눈 앞의 것만 요구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지구 위에서의 삶 뿐 아니라 이 육신을 떠난 후의 영원한 삶 전체를 바라보시고 필요한 것을 주신다.
그 약속이 바로 영생이다.
그렇다면 영생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것을 궁금해 하고, 알아야 한다.
영생(whole and lasting life)은 그 이름 자체에서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혼동을 많이 준다. 하지만 영원히 사는 것 자체가 영생을 의미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나 지옥에서나 누구나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곳에,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에 들어갈 것이다.
“Then those ‘goats’ will be herded to their eternal doom, but the ‘sheep’ to their eternal reward.”
(마태복음 26:41)
이 말씀을 통해 영생이 말하는 생명이 '길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ternal doom이던, Eternal Reward이든 사람의 영은 영원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Life'의 의미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달라스윌라드(Dallas Willard) 목사의 '영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메시지가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Source : http://blog.daum.net/rfcdrfcd/15973390)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And this is the real and eternal life: That they know you, The one and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sent.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아는 것(Know)' 이라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앎'이 지적인 '앎'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너 빌 게이츠라고 알어?" "어, 잘 알지"
빌게이츠라는 유명한 사업가라는 존재를 지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과 빌게이츠와 형, 동생하는 친밀한 관계로서 그를 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마리아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천사에게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습니까?" 라고 물었던 '앎'도 지적인 앎이 아닌 '깊은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 맥락에서 영생은 관계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깊이 있는 친밀한 관계 그 자체이다.
'신'과 '인간'의 친밀함의 회복. 이것이 영생의 실체이다.
죽, 영생이란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한 상태에서 그분과의 교제를 통해 얻어지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갈라디아서 5장 22~23절)를 누리며 죄와 욕심과 환경으로부터 자유함(요한복음 8장 32절) 속에 살아가는 삶'이라고 정의해 볼 수 있겠다.
이 상태가 바로 천국, 즉 흔히 표현하는 하나님 나라이며 이것은 육체의 죽음의 시점과 무관하게 지금 이 순간 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왔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 같다.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은 삶에는 징표가 나타난다. 그것은 '왕노릇(Reign)'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For if, by the trespass of the one man, death reigned through that one man, how much more will those who receive God's abundant provision of grace and of the gift of righteousness reign in life through the one man, Jesus Christ.(로마서 5:17)
왕노릇은 Reign. 즉, '통치'를 의미한다. 이 통치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기 쉬운 것이 우리가 세상의 통치자들로 부터 'Reign'의 개념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억압하고 군림하고 지위적인 우위를 누린다.
하지만 참된 통치를 이해하려면 참된 왕인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의 철학을 보여주는 정점은 인간을 위해 인간의 몸으로 지구에 내려와 피통치인들을 대신해 수난을 겪고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서 지옥에까지 내려가신 사건이다.
한 마디로 '희생과 섬김'이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당부하신 말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장 14-15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34절)
즉 왕노릇 한다는 것은 섬김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누리는 자는 그 때야 비로서 '그리스도인' 되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비로서 '바른 통치'를 시작한다. 심어주신 곳에서 주신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것이다.
영생을 얻기 전까지는 죽음, 돈과 명예, 섹스, 건강, 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걱정, 비교의식의 거대한 무게에 눌려(노예가 되어) 교만, 두려움, 분노, 시기심의 매인 삶을 살던 인간이, 영생을 얻음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자로서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기쁨안에서 왕의 자녀답게 통치하며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믿는자들에 대한 '보상' 이다.
당신은 어떤가? 내게는 마귀가 매일 제안하는 보상보다 하나님의 것이 훨씬 좋아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For the third test, the Devil took him to the peak of a huge mountain. He gestured expansively, pointing out all the earth’s kingdoms, how glorious they all were. Then he said, “They’re yours—lock, stock, and barrel. Just go down on your knees and worship me, and they’re yours.” Jesus’ refusal was curt: “Beat it, Satan!” He backed his rebuke with a third quotation from Deuteronomy: “Worship the Lord your God, and only him. Serve him with absolute single-heartedness.”
(마태복음 4장 8절~10절)
예수님도 마귀의 마지막 시험 앞에서 그러셨다.
자, 지금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약속하신 영생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함을 어떻게 얻게 되고 왕노릇하는 삶을 살게되는지 살펴보자.
친밀함은 아래 세단계로 이루어진다.
1. 임재: 나의 자아가 죽고(회개) 내 안에 성령님이 사셔야 한다.
: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가 이야기 하는 '24시간 주님을 바라보자'라는 권유가 이 목적에 적절해 보인다. 어쨌던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안에 거하는 것이다. '인생의 운전대를 예수님께 내어드려라', 혹은 사영리에서 흔히 보던 '인생의 왕좌를 내어드린다'. 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 이다.
아직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우선 예수그리스로를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믿고 초청해야 한다.
이미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한 사람은 나의 교만과 욕심을 매순간 회개하고 나를 정결케 해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해야 한다. 그리고 내 안에 좌정하사 나를 다스려 달라고 구해야 한다. 성령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임재하신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This is what I want you to do: Ask the Father for whatever is in keeping with the things I’ve revealed to you. Ask in my name, according to my will, and he’ll most certainly give it to you. Your joy will be a river overflowing its banks!
(요한복음 16장 24절)
2. 말씀: 하나님 그 자체를 묵상하라
: 성령님이 임하시면 두려움이 걷혀지고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또 가려졌던 눈이 맑아지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인데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도 한다. 미웠던 사람이 갑자기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영적인 체험은 반드시 겪어보아야 하고 가능하면 매일 누리기를 권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새가 날개짓을 멈추면 중력에 의해 떨어지듯, 우리는 아직 세상의 권세잡은 자의 중력이 강력한 곳에 살고 있다.
그래서 말씀을 읽어야 한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인 까닭이다.
성령이 임재하면 위에서 말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말씀 자체를 통해서도 동일한 체험을 하게 된다. 평안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계속 내 안에 채워 더욱 친밀함의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
그래서 큐티(Quiet Time: 매일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와 성구암송의 중요성이 여기서 대두된다.
매일 하루 30분 정도 말씀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아예 말씀을 암기해서 하루 종일 그것을 되내이는 것은 말씀과 친밀함을 누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성경책이 없이도 운전중에나, 업무중에나,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상황에도 묵상을 지속할 수 있다.
오대원 목사의 '묵상하는 그리스도인(The Meditating Christian)'이라는 책은 이 2단계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위해 좋은 가이드이다.
처음 읽을 때 '입에넣은 딱딱한 플라스틱'과 같이 느껴지던 말씀이, 묵상을 거듭하며 '시원하고 달콤한 슈크림'같이 변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매일 해보길 권한다.
3. 기도: 말씀으로 기도하라
: 나의 감정을 토로하는 기도나, 세상에서 내가 바라는 것을 구하는 기도도 좋다. 하루 종일 운전하며, 일하며, 설겆이하고, 샤워하며 하나님과 기도하고 대화하는 것은 좋다. 이 지구위의 걱정꺼리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는 기도도 안하는 것 보다는 훌륭하다.
그러나 또 하나 권하고 싶은 것은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말씀에 근거해서 하는 기도는 힘이 있다. 해보면 그것을 체험할 수 있다. 이른 바 기도라는 최첨단 무기를 제대로 쓸 수 있는 법을 알게되는 것이다.
또한 기도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전능한 신이 나의 기도를 듣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지존자이신 그분과 교류한다. 그분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그분과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친밀함이 위의 3단계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면, 이제는 왕노릇할 차례이다. 왕노릇은 섬김이고, 다른 말로 이웃사랑이다. 다음 두 단계를 통해 통치가 구체화 된다.
1. 영생을 사는 이들과의 교제 :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
: 임재, 말씀, 기도로 공고해진 기반은 교제를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그 영향을 받는다. 어떻게 약삭빠르게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여 자산을 늘리는가가 우상인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돈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온다. 자식 교육이 우상인 사람을 만나면 내가 너무 자녀를 막키우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즉, 만남을 통해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욕심을 주는 교제가 있고, 만남 자체를 통해 평안과 만족,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게 됨을 주는 교제가 있다.
내 주변을 어떤 교제권으로 채울지는 매우 신중하게 디자인해야 하는 내용이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영생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입으로 나오는 주요 관심사와 삶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함에 관심이 깊은지. 말씀과 기도에 관심이 깊은지. 다른 사람의 영적인 상태에 관심이 깊은지를 보면 된다. 하나님의 관심사와 그 관심사가 얼마나 일치하는 지를 보라. 또 그런 이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구하라.
또 내가 그들에게 그러한 교제권이 되어주기 위해 지혜를 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2. 증거: 남도 살고 나도 살고
: 최고의 섬김은 사람들이 스스로 영생의 삶을 살도록 제자삼아 가르치고 지켜 행하게 하는 것이다.
밥을 사주고, 나의 시간과 돈을 나누어 주는 것도 훌륭한 섬김이지만, 결국은 그들이 나를 떠나 스스로 자기 발로 일어서서 하나님께 직접 공급을 받게 해주는 것이 섬김의 끝이다.
아이를 낳아 이유식부터 시작해서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가는 건실한 청년으로 만들어 주는 부모의 역할과 유사하다.
그것이 증거이다.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도 한 방편이지만, 교회에 나오게 하는게 증거의 본질은 아니다. 그들을 제자삼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돕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들을 알게 하고, 삶에서 지키게 하는 것까지가 증거 이고, 섬김의 끝 이다.
또 다른 사실은 증거는 남을 살리는 것일 뿐 아니라 내가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증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야 상대의 선택이지만, 증거를 하는 나는 더욱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을 가지게 된다. 즉, 증거하는 삶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 시킨다.
3. 순종하는 삶: 구별된 삶
: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뜨거운 불에 손을 넣고 하나님께 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통치하는 '왕의 자녀의 신분'에 걸맡는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성령의 임재와 말씀, 기도, 교제, 증거의 기초가 없이 순종하는 삶은 불가능 하다.
수많은 영향력 있던 목사와 신부, 사역자들 조차 성적인 문제, 돈 문제, 명예 문제로 무너지는 것을 긴 시간 인류는 충분히 봐 왔다. 단순히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순종하는 삶은 어쩌면 그리스도인의 증상(Symptom)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듯,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두려움 없이 순종하는 삶을 산다.
기도하며 무릎으로 계단을 올라가거나 나 자신을 가죽채찍으로 채찍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강하고 투철한 의지보다도 '오직 믿음으로' 내 안에 왕좌에 계신 그리스도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다.
강력한 의지로 이루어진 경건해 보이는 삶은 도리어 그러지 못하는 남을 정죄하는 교만의 시작이 되기가 싶다.
위의 6가지 요소를 매일 나의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관리 운영하면서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즉 그토록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얻게 하시고자 하셨던, 그 영생의 삶이 시작되고 강화되는 것이다.
육체로 지구위에서 살고, 시간이 지나 육체가 죽고, 예수님이 돌아오실 대 새 몸으로 다시 부활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공간(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과 물리적으로 영원한 시간을 사는 것은 이 영생과 별개로 진행되는 사건 이다. 영생의 문은 이미 우리에게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