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묵상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 밝히 비춰 주시니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합니다.
밝을 때에 노래와 어둘 때에 기도로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후렴)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새 543 통 342 어려운 일 당할 때)
어렸을 때는 찬송가가 그렇게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요즘은 쓰지도 않는 문체로 무슨 뜻인지 파악이 어려웠다.
또 가사는 무슨 4절까지나 있는지. 동일한 후렴구와 함께 4절까지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참 곤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늘 부르던 찬양이 바로 지금 나의 이야기였음에 머리가 쭈뼛해졌던 적이 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제야 내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가 이미 찬송가에 상세하게 녹아 있었다.
찬송가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름다운 시였으며, 선배 신앙인들의 간증 그 자체였다.
이 찬양도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준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살면서 어려운 일은 습관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바다에 파도가 왔다가 갔다가 다시 오듯, 어려운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문제는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인가이다.
우리의 해결 능력으로 어려운 일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파도를 만나게 된다.
이때 어떤 사람은 미쳐버리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며,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많다. 이유는 단 하나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그런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라고 까지 약속하셨다.
하지만 실제 어려운 일을 부딪혀 보면 어떠한가? 두렵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믿는 나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뿐이다. '의지하는 나의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 주님에게만 모든 초점을 모아야 한다. 문제를 보지 말고 주님의 얼굴을 보아야 한다.
성령께서 내 마음 밝히 비춰 주시니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또 구하다 보면. 회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회개를 하며 계속 주님의 얼굴을 구하다 보면, 어느새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시면 내 마음을 밝히 비춰 주신다.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숙면이 된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두렵지가 않고 마음이 기쁘다.
당장 이번 달 직원들 월급 줄 수 있을지가 불투명할 때도 마음은 평안하기 그지없다.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무책임해 보이는 상태'가 된다.
영적인 관점에서는 '믿음이 커진 상태'이다.
이쯤 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느껴진다. 기도 중에 확신이 올 수도 있고, 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찬양을 듣는 중에 느낄 수도 있다.
그 인도하심은 언제나
1. 내가 생각했던 경우의 수의 범위를 벗어나며
2. 이성적으로는 따져보면 미친 짓이나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있고
3.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의 회복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옳다.
이 것을 두세 번 경험해보면 이성적인 판단과 정보 수집 및 분석을 통한 길 찾기를 멈추게 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내 삶을 던지게 된다.
매우 냉철하고 전략적이던 사람이 상당히 무책임해 보이고 과감해진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갈 새" 모세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기 시작한다.
밝을 때에 노래와 어둘 때에 기도로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 있는 사람은 심심할 틈이 없다.
무언가 심심하고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 밖으로 나갔다는 중요한 증세이다.
하루 중 여유가 생겼을 때 무엇을 하는가? 그것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바로 보여준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보는 습관. 여유가 생기면 예능이나 영화를 보는 습관.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카트에 상품들을 담아 놓는 습관. 이런 습관이 그 사람의 핵심 흥미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삶이 평탄할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분의 얼굴 구하기에 바쁘다.
삶의 형세가 위태해질 때는 엎드려 기도하고, 나의 죄악을 돌아보아 통회하기에도 분주하다.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사람의 업의 본질'이며, '사람의 존재 이유'이다.
이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거나 다른 더 재미있는 것이 있다면, '아차 무언가 잘못 가고 있다'라고 인지해야 한다.
바로 회개와 기도. 말씀묵상의 자리로 돌아와 맑은 시각을 회복해야 한다.
(후렴)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 의지합니다.
어릴 때는 솔직히 하나님을 의지할 일이 별로 없었다. 어려운 일도 별로 없었고, 있어도 든든한 부모님이 커버해 주셨으니깐.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 나이가 들수록 숨을 돌릴 틈 없이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하나님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너무 지쳐요..."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즉, 나이가 들수록 정말 '의지할 것뿐'이라는 말에 통감하게 된다.
하지만 솔루션은 선명하다.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만 의지하는 것이다.
그 일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 없다. 좋은 결과를 내가 정의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I'm nothing" 이 겸손의 핵심이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자.
그저 어떤 일을 당해도 예수께만 토스하고, 그분의 처분을 기다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