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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Architect Mar 29. 2024

위스키 단상

3일에 걸쳐 13가지 위스키를 시음해보고 시음노트를 적다

나는 사실 지인들에게 소문난 '애주가'로 정평(?)이 나있다. 오죽하면 '저 놈은 술 먹으려고 운동한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까. 이번에는 '알코올 라이프' 기행기를 써볼까 한다.


#1. 술의 역사


스스로 걸어온(?) 술의 역사를 살짝 밝히자면 20대 초반에는 정말 아무거나 잘먹는 잡식가였지만 20대 중반부터 취향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처음으로 접하면서 위스키에 입문했고, 전통주에 한창 빠져 지방에 놀러가면 꼭 근처 양조장을 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30대 초중반이 되었을 땐 와인에 빠져 지금까지도 그 취향은 계속되고 있다(와인 셀러에 100병 넘게 있는 건 함정). 하지만 마음의 고향(?)은 위스키라고 생각하는지라 내가 좋아하는 놈들 위주로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집에 구비해 놓고 있다. 최근 오랜만에 위스키가 끌려서 6개월~1년 정도 보관한 위스키를 비교 시음하는 시간을 가졌다.


#2. 위스키란?


위스키는 곡물을 발효시킨 다음 증류해 술 원액을 추출하고, 오크통에서 수년간 숙성한 술을 말한다. 재료(곡물)에 따라서는, 

1.싱글몰트위스키(단일 증류소에서 100% 보리 맥아를 사용해 단식 증류기로 증류), 

2.그레인 위스키(밀, 호밀, 옥수수 등 맥아 이외의 곡물로 만든 위스키), 

3.블렌디드 위스키(싱글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적절히 섞은 것- 우리가 잘 아는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조니워커가 여기에 해당) 

4. 블렌디드 몰트(여러 증류소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블렌딩 한 것)로 나눈다.  


한편, 생산지, 제조법에 따라서 1.스카치(스코틀랜드) 2.버번(미국 켄터키 주, 옥수수 51% 이상) 3.테네시(버번과 거의 유사하지만 테네시 주의 독자 주류법에 따라 만든 것) 4.라이(RYE, 호밀의 비율이 51% 이상) 5.콘(Corn, 옥수수의 비율을 80% 이상), 6.캐나디안(캐나다에서 라이와 콘을 섞어 만드는 것) 7.아이리쉬(아일랜드에서 보리, 호밀, 옥수수를 적절히 섞어서 만듦)로 나뉜다.


#3. 시음 노트


개인적으로 싱글몰트 위스키와 버번 위스키를 좋아한다. 특히 한번 오픈한 싱글몰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기 접촉에 따른 화학작용 때문에 더 부드러워지고 맛이 오묘하게 변한다. 오픈하고 잘 관리해둔다면 6개월-1년 6개월 사이에 본연의 향과 부드러워진 풍미를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싱글몰트의 대표격은 스카치(스코틀랜드) 위스키이지만 일본(선토리), 대만(카발란) 등 후발주자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작년부터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와 일본, 대만 싱클몰트 위스키를 사모았다. 이번에는 보관하고 있는 위스키를 20ml씩 따라서 비교 시음을 해봤다. 각 위스키를 20ml만 맛보고 한번에 대량으로 마시지 않는 이유는 위스키가 비싸서라기 보다 시간만큼 향상된 질좋은 숙성 위스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술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시간이 자연스럽게 만든 풍미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테이스팅 노트는 다음과 같다


1일차: 대체로 무난하고 입문자들도 좋아할 위스키들의 비교시음 -1위는 카발란 클래식


*오반(14년산, 하이랜드) - 가장 오크 바닐라 터치 도드라짐, 달달한 카라멜, 오렌지, 배 향

*글렌모렌지 넥타도르(12년산, 하이랜드, 소테른 캐스크 피니시) - 기본적으로 산뜻하고 화사함, 무화과 향

*카발란 클래식(NAS, 대만, 8개의 다른 캐스크 피니시) - 감초, 카라멜 진한 점성, 진한 무화과/신 향 맥주 레몬 향/ 시나몬향/ 피니시는 매우 라이트하면서도 점성강한 달달한 배

*발베니(12년산, 스페이사이드, 버번 + 6개월 셰리 캐스크 피니시) - 오크터치, 낮고 깊은 향, 견과류 향 /  꽃향, 산미와 세리 와인 향

*글렌드로냑( 15년산, 하이랜드, 쉐리캐스크) - 가장 향이 무난, 레몬, 셰리 향, 꽃 향, 바디는 진짜 무난 무난

*글랜모랜지( 10년산, 하이랜드) - 오이, 레몬, 안개꽃 /버번 캐스크/ 달콤하고 아몬드 향

*글렌피딕(12년산, 스페이사이드, 셰리+버번 캐스크 ) - 폴로워, 장미, 오크, 바닐라, 톡톡 튀는 민트 향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산지는 크게 하이랜드, 스페이사이드, 로우랜드, 아일라, 캠벨타운으로 나뉜다.

*위스키는 산지의 물의 풍미도 중요하지만 어떤 캐스크(오크통)에서 숙성을 진행했는지에 따라 큰 풍미가 결정된다. 옛날에는 버번캐스크, 아메리칸오크캐스크를 많이 사용했으나 요즘에는 셰리 캐스크, 포트 캐스크, 소테른 캐스크, 미즈나라(물참나무) 캐스크 등 다양한 캐스크로 숙성하여 여러 풍미를 가진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캐스크에 숙성한 시간에 따라 몇년산인지가 결정되고 오래 숙성할수록 고급 위스키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


2일차: 호불호가 갈리는 피트(Peat) 향이 충만한 위스키들의 비교시음 - 1위는 요이치


*라가불린(8년산, 아일라) - 센 피트, but 민트로 빠지는 배 사과, 아카시아

*요이치(NAS, 일본) - 카라멜, 배, 모과, 피트, 딸기향, 견과류

*보모어(12년산, 아일라)- 레몬, 아카시아, 오렌지, 피트 피니쉬

*아드벡(10년산, 아일라) - 피트향 가장 셈, 레알 스모키 훈제 피니쉬

*탈리스커(10년산, 하이랜드 스카이섬) - 피트향이 다른 위스키에 비해 비교적 약함, 벨런스도 무난, 특징도 무난함

*피트(Peat)는 맥아를 건조, 훈연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탄소 함유량 60%미만의 석탄을 말한다. 한국어으로는 '이탄'또는 '토탄'이라고 한다. 아일라 섬쪽에 이탄(Peat)이 풍부해 피트를 다량 활용하여 맥아를 건조했고 이는 독특하고 스모키한 아일라 위스키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했다.


3일차: 프리미엄 끝판왕들의 대결 - 초반은 카발란 솔리스트 셰리 캐스크, 후반은 시그넷의 풍미가 더 좋았다.


*글랜모렌지 시그넷(NAS) - 처음은 안풀린 느낌, 시간을 오래 두고 열리면서 복합적인 풍미 시작 아몬드, 헤이즐넛, 바닐라, 오크 , 초콜렛, 뒤로 가면서 더 묵직하고 단단하고 깊은 나무 향

*카발란 솔리스트 셰리 캐스크(NAS, CS) - 전체적인 밸런스가 극강, 모든 향긋한 향을 다 집합해 놓은 향, but 지속성, 강건함이 시그넷에 비해 약함, 팔렛은 산도가 꽤있고 셰리 맛과 향이 느껴짐


#4. 마치며


술잔에 위스키를 갓 따랐을 때는 신흥 강자 일본, 대만 위스키의 선전이 돋보였다. 하지만 10분, 20분 후에 강건하고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은 위스키는 전통의 강자 스카치 싱글몰트 위스키였다. 이는 와인도 유사한데, 소위 구대륙 와인(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이 신대륙 와인(미국, 남미, 호주)에 비해서 처음에 열었을 때는 알코올 향이 많이 나고 거친 느낌이 나지만 오픈한지 1시간, 2시간이 지나면 훨씬 구조감이 단단해지고 향도 정돈되어 다양하게 변주한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후발주자들이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오픈하고 맛보는 첫 잔에 조금 더 깊은 인상을 주고자 노력했고, 이에 성공했지만 세월이 축적하는 암묵지로 전해지는 양조기법을 따라가기에는 조금 부족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약 10년 전 위스키를 처음 접했을 때 '무조건 싱글몰트는 스카치 위스키'라는 편견이 있었다면 지금은 일본, 대만 호주, 인도 등에서 생산되는 싱글몰트들도 꽤 개성있고 훌륭하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신흥 강자들이 어떻게 위스키 제조 기법을 더 발전시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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