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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Architect Apr 21. 2021

나는 어쩌다가 변호사가 되었는가?(1편)

공대를 거쳐 경영대를 졸업하다

지난 1년전, 코로나가 터진 후 사람들을 만날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만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과거를 정리하고 돌아보기로 했다. 삶의 궤적을 따라서 기억을 더듬어 가면 미래로 가는 방향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대학교 입학 이후 1년 전까지 나의 삶의 궤적을 정리해보았다. 그 흐름을 이어 지난 1년을 살아내었고 여러 고비를 넘겨 "내가 왜 스타트업 scene에서 활동하려고 하는지"라는 글로 브런치 작가 데뷔전(?)을  치뤘다.


내가 왜 스타트업 scene에서 활동하려고 하는지 (brunch.co.kr) 


앞으로 이야기 할 5편의 이야기는 데뷔작의 전초전, 즉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첫 글이 미래를 향한 출사표였다앞으로 이어질 5편의 글은 나라는 사람을 과거로 돌아가 설명하는 글이다. 1년 전의 글이지만 여전히 나를 잘 읽어내고 표현하는 글이기에 조심스레 다시 기록으로 남겨본다.





사실, 어렸을 적 꿈은 변호사가 아니었다.(변호사 중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법조인이 꿈이라는 사람이 몇 될까?)


초등학교 시절 주위에서 대법원장이 좋다고들 해서, 우쭐한 마음에 장래희망을 대법원장이라고 잠깐 말하기는 하였으나 진지하게 법조인이라는 꿈을 꿔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중학교 이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수학을 좋아했기에 당연히 이과를 간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에서는 줄곧 이과 공부를 하였다.


당시, 이휘소라는 인물에 심취하였고, 공학박사 출신 경영인인 진대제나 황창규 같은 사람이 매우 멋있게 보였다. 공대에 진학하는 것이 소위 '간지'나는 삶과 사회에 대한 선한 영향력을 동시에 실현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전기컴퓨터공학계열에 입학하였고(진대제, 황창규 출신 학과라는 점은 덤) 해외 유학을 위하여 동기들과는 달리,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군복무를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군복무 2년 동안 사회 물을 먹었다고, 2년간 전공 공부와 연구에 전념한 친구들에게 몹시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고, 따분하고도 지루해 보이는 연구가 하기 싫었다. 공학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펼치겠다는 소명에 대해선 그 껍질만 좋아했을 뿐, 내부 실상을 좋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당시 내가 동경했던 사람들(진대제, 황창규 사장)이 전문 경영인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경영대'로 전과를 결심했다. 경영대 공부가 무척 재미있었다.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적(이윤 창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이나 툴(Tool)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경영은 욕망의 학문이었으나 욕망의 갈래를 잘 잡아서 적절하게 분출해 주면, 사회는 역동적으로 변할 것이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부가가치를 얻으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사회 현상을 분석할 때 비즈니스를 통한 접근방법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비즈니스를 수단 삼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학회 WISH(what is strategy for humanity)'의 임원진으로서 열심히 연구하고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뿌듯한 경험도 여럿하였고 작은 실패도 경험했다. 학회 활동과 전공 공부를 밸런스 있게 매진하여 경영대학 수석졸업이라는 과분한 영광도 얻게 되었다.


한편, 마음 한켠에 '가치(value)'나 '정의(justice)'에 대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위 '먹물'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데, 돈을 버는 공부인 경영학을 파고파고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이게 다 '돈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 너무 허무했다. 20대 중반 뜨거운 피가 흐르는 뭣 모르는 청년에게는 승복할 수 없는 이야기로 들리기도 했다. 중2병이 늦게야 발병했고, 대단히 뭔가 뜨겁고 정의로운 것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로스쿨 진학을 결심하였다. 로스쿨 졸업 후 30살이 되면 현대사회의 두 축인 자본주의(경영학)와 법치주의(법학)를 알게 될 것이고 세상을 잘 볼 수 있는 식견을 가질거라는 생각(라고 말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생각)도 한 몫했다.


4학년 1학기부터 로스쿨 진학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우주의 기운을 모아(?) 리트공부, 텝스공부, 한자공부, 학점관리를 한 결과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우선선발되었다(사실 로스쿨 초기 기수라 지금보다는 비교적 진학하기가 쉬웠다). 당시 인문대 건물에서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는데 우선선발 결과를 확인하고 너무 기뻐 소리지르며 뛰어나갔던 기억이 난다(사실 그때부터가 지옥의 시작이었는데 인생은 오래 살고 볼일이다:)).


로스쿨 최종합격 후, 기말고사가 몇개 남았는데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으나, 경영대 학업생활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다(혹시나 하고 차석 졸업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정말 하기 싫은 기말고사 공부를 꾸역꾸역해내었다. 특히 마지막 시험이었던 미시경제학 기말고사 전날 밤, 사회대 CU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욕하며 공부하기 싫다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월 졸업식은 너무 황홀했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수석졸업 소식을 전해들었고 경영대학 졸업생 대표로 졸업생 연사를 하였으며, 전체 졸업식에서 경영대학 대표로 총장상을 받았다(지나고 보면 지난 10년 간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여물어지지 않은(심지어 현실적이지도 않은) 진학 동기를 지닌 채로 로스쿨을 진학하자마자, 진정한 방황이 시작되었다. 공부에 있어서 법학은 녹록지 않았다. 담담하게,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여 공부해야 했지만 공부하지 않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법학의 유용성과 방법론을 지적하고 비판하며 로스쿨에서 계속 겉돌고 방황했다. 하지만 덕분에 멘탈관리를 위하여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배웠고, 세상에서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으며, 매우 많이 겸손해졌다. 그러나 내 삶은 내가 바란대로 쉽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방황 끝에 자퇴하는데에는 결국 실패(?)하였고, 지도 교수님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도움이라면 힘들 때 술을 함께 먹어 준 것, 덕분에 공부에는 악영향을 미쳤지만) 우여곡절 끝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 모두가 선망하는 대형 로펌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제는 긴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 내 삶에 따스한 날들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2편에서 계속)


(2편)

나는 어쩌다가 변호사가 되었는가?(2)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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