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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윤 변호사 Sep 24. 2023

아파트 헬스장 사람들

우리 동네 health 장

요즘 내가 운동을 하는 아파트 헬스장은 가격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열악한 곳이다. 처음 이사를 와서 헬스장을 등록하려고 알아봤을 때 ‘한 달에 2만 원이라니 싸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가 돈을 잘 버는 줄 알고 PT, 1인샵, 필라테스 같은 운동을 하던 때의 감상이었을 뿐, 백수된 자의 마음으로 찾아보니 한 달에 2-3만 원에도 수많은 기구가 있는 공장형 GYM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파트 헬스장이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아파트 헬스장은 지하 1층 주차장 한편에 위치하고 있고, 나름 샤워실까지 갖추고 있지만(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샤워실 문 앞에는 <샤워실 이용을 자제합시다. 이용료 인상의 이유가 됩니다!>라고 쓰여있다. 뭐, 합당한 경고문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헬스장이잖아. 운동하고 집에 가서 씻는 게 여러모로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아무튼. 트레드밀은 5개 정도, 사이클은 2대 정도 있기는 하지만 트레드밀 하나는 인클라인이 안 된다. 기본적인 기구들이 있기는 한데, 케이블은 언젠가부터 무게추가 살짝 망가져서 중량을 변경하려면 발과 손으로 낑낑대며 위를 눌러줘야 중량 변경이 가능하다.


렉 같은 건 아예 없기 때문에(누가 기증한다고 해도 놓을 자리도 없다) 나는 내 허리를 위해서 바벨 스쿼트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건 오히려 좋긴 하지. 나는 바벨 스쿼트를 하면 자꾸 목이 아파서... 에어 스쿼트가 좋다.


그리고 바벨이 있는 곳 바로!! 뒤에 하체 기구들이 있기 때문에 바벨을 쓰는 것도 굉장히 제한적이다. 몰라 몰라~~ 난 아직 헬창이 아니라 그런가 내 뒤에 누가 앉아서 레그 익스텐션을 하는데 거기에 내 엉덩이를 들이밀며 데드리프트를 할 수가 없어!!!!!! 그런 일은 없어!!!!!!!!!!!!!

이 사람 이러고 있는데 코 앞에서 내 엉덩이를 들이밀 수는 없다고요


덤벨은 잘 구비되어 있지만 덤벨 운동을 할 공간이... 대체 어딜까? 아직까지 찾고 있다. 그래도 나는 적합한 공간을 찾아 요리 비켰다가 저리 비켰다가 하면서 꿋꿋이 덤벨을 든다.


쓰자면 더 많지만(언젠가 구획별로 비판해 보겠다) 아파트 헬스장은 이런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다. 왜냐? 헬스장이 집에 있으니까. ^^ 인간은 운동을 하기엔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이기에, 집 밑에 헬스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머지 단점을 압도하고야 만다.


어쨌든 그동안 미묘하게 비싸다고 생각하며 매번 1달, 2달 단위로 등록해 오다가 5월에 등록하러 내려갔을 때 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6개월 등록하면 1개월을 더 준다는 것!!! 그 얘기를 듣자마자 관리사무소 아저씨에게 <어머 그동안 저 그런 설명 한 번도 못 들었어요!!!!!!!!!!!!>라고 외치며 7개월을 등록했고, 어영부영 반백수의 일상이 지속되다 보니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만 많이 적당히 버는 큰 성공 같은 건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사무실 옆에 삐.가.뻔.쩍. 하고 심지어 사우나까지 이용할 수 있는 월 8만 원(연 등록 기준)의 헬스장으로 갈아타지 못한 채 아파트 헬스장을 계속 이용하고 있다.


언젠가 성공하면 떠나리라!! 같은 마음을 갖고 내려가는 헬스장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는데 그건 바로 헬스장 사람들이다.


아침 9시에 도착하면 보이는 고정 멤버 5명(+-2명), 오후 3시에 가면 가끔 뵙는 1명, 저녁 8시에 가면 보이는 고정 멤버 2-3명은 이제 그럭저럭 얼굴을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물론 나는 I형 인간이고 아파트 헬스장 이용객 중 나름 어린 축에 속하기 때문에 목례라든지 눈인사는 하지 않지만 (예의를 밥 말아먹은 게 일부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격상 친목을 나눌 수 없다는 의미) 에어팟 너머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아침 8시 오래된 DJ의 라디오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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