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매일매일 쓰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썼던 일기를 보면 이만하면 잘 살았네 하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내향인인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에너지가 충전되는데요. 혼자 있는 시간엔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일기를 쓰는 시간은 하루 종일 소진되어버린 제게 쉼을 주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죠.
사법시험에 떨어졌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실컷 울고 난 후에도 일기를 썼습니다. 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는지 모르겠다는 의구심, 원망, 억울함을 쏟아냈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다짐과 함께요.
첫 아이를 유산했을 때의 일기에는 가슴 아팠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지금의 아이를 낳은 경이로운 순간의 뭉클한 감정 역시 써 내려갔죠.
스스로를 무한 칭찬하기도 하고,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기도 합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후회의 말을 쓰기도 하죠. 때로는 상처를 준 이들을 향해 독설을 퍼붓기도 하고요. 그때 그 상황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 내기도 하고,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담은 말들을 풀어내기도 합니다. 할 말이 너무 많을 땐 따라가지 못하는 펜이 답답하기도 하죠. 그렇게 분풀이, 한풀이를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합니다. 다 쏟아냈으니까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을 많이 남깁니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사실에 대한 기록은 어떤 형태로든 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과거를 추억할 수 있지만, 그때의 생각과 내가 느꼈던 감정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죠. 과거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현재 지금의 감정입니다. 그때의 그 감정과 생각은 글이 아니면 풀어낼 수가 없으니까요.
일기에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고, 내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일기장 속엔 오로지 내가 있습니다. 진짜 내 모습이 그대로 담긴 일기를 쓰는 시간. 내가 비로소 나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오롯이 나를 나답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