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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정 변호사 Feb 28. 2022

글쓰기는 또 다른 기회를 가져온다

사람들은 글쓰기를 권하는 내게 글을 쓰면 무엇이 좋은지를 물어본다. 동료 변호사들은 글쓰기가 사건수임으로 연결되는지를 궁금해한다. 글 쓰는 일이 고되다고 말하면서도 왜 글을 쓰는지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왜 글쓰기를 놓지 않는 걸까. 단순히 업을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이미 겪은 사람들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처음 글쓰기의 시작은 퍼스널 브랜딩이었지만 절실함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출산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잠시 일을 쉬고 있을 때였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은 행복했지만, 변호사로서의 나는 점점 뒤처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불안했다. 이런 기분을 떨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엄마가 아닌 나 자체로 그리고 변호사로 설 자리가 필요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업무에 복귀하기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고 지금 당장 사건수임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썼다. 당시로서는 나도 무언가를 한다는 기분을 갖는 게 중요했다.     


PDF 전자책 쓰기는 쉬운 게 아니다     


내 글을 읽고 도움이 많이 됐다는 이들의 이야기에 점점 욕심이 커져만 갔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더 알려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책도 쓰고 싶었다. 변호사이니 법률 서적을 쓰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블로그에 한 주제의 글이 제법 모였다. 소송은 일련의 절차이기 때문에 흐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블로그에 흩어져 있는 글을 모으고 목차를 잡아봤다. 종이책을 쓰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때마침 브랜딩 컨설팅을 받고 있었는데 김인숙 대표가 “변호사님, 굳이 종이책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요즘 PDF 전자책 많이들 써요.”라면서 전자책 쓰기를 권유했다. 그렇게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눈을 돌렸고, 관련 분야의 전자책을 몇 권 사서 읽어봤다.      


시중에는 두 시간이면 쓴다고 하거나 하루면 된다면서 금방 쓰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콘텐츠를 담는 그릇만 다를 뿐이지 그 안에 담는 내용은 최고여야 한다. 오히려 꼭 필요한 내용을 콤팩트하게 담아야 하기에 쉽게 생각하고 덤빌 일은 아니다. 나 역시 본격적으로 PDF 전자책을 쓰기 시작하고 8개월 만에 완성했다.      


나는 전자책을 쓰면서 몇 번이나 좌절했다. 그때마다 써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고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전자책이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있을 때는 아예 텀블벅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프로젝트 마감일을 두어 마무리 할 수밖에 없는 장치를 마련했다. 전자책은 에디터 추천까지 받았고 목표 금액의 982%를 달성했다. 펀딩이 끝난 이후에는 판매계획에 대한 문의도 여러 차례 받았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보자     


앞으로 전자책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고, 남편은 그런 내게 종이책을 써보라고 했다. 종이책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싶어 전자책을 썼었는데,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관련 분야의 책을 많이 쓰는 곳을 검색도 해보고, 이 책의 출판사 대표님께도 출판사 몇 곳을 추천받았다. 나는 곧바로 출간기획서를 쓰고 스물한 곳의 출판사에 투고했다. 출간기획서에는 제목, 저자 소개, 집필 의도 및 계획, 원고의 특장점, 타깃, 관심도 및 홍보방안을 간략하게 적었다. 기획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 중점을 뒀다. 무슨 책을 쓰고 싶은지 확실했기 때문에 부연 설명을 하는 출간기획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투고 이후에 나는 계속된 거절 메일에 실망했고 출판사들의 묵묵부답에 답답했다. 몇 번의 거절 메일을 받고 의기소침해 있는 내게 남편은 “한 곳만 연락오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그 말이 그때는 참 위로가 됐다. 여러 곳에서 제안을 받는다고 다 계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랑할 거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다행히 두 군데에서 긍정적인 연락을 받았고 우연히도 마지막으로 투고했던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처벌 뒤에 남는 것들>이라는 책을 출간한 출판사여서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법률 서적을 출간하고 싶었던 꿈이 곧 현실이 된다. 블로그에 정보성 콘텐츠를 올리지 않았다면, PDF 전자책을 쓰지 않았다면 기회를 얻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직접 출판사 문을 두드리지 않고 포기했다면 출간은 힘들었을 것이다. 글쓰기가 어떤 기회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글을 계속해서 썼기 때문에 다른 기회를 찾고 시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쓰기에 집중했고 글을 쓸 수 있는 방향으로 플랫폼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마음이 맞는 변호사 세 명과 함께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뉴스레터는 요즘 유행이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발행하던 뉴스레터를 개인들도 발행하고 있다. 나도 뉴스레터를 해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변 변호사들에게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모두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우리는 로하우(LAWHOW)라는 이름도 만들고 한 달에 두 번씩 구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네 명의 변호사가 각자의 스타일로 자기 분야의 법률정보를 쉽게 알려주는 게 로하우의 일차 목표이다. 앞으로는 편하게 일상의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놓으려고 한다.      


기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글을 쓰면서 점점 욕심은 커져만 갔다. 글쓰기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 두렵기도 했지만 나를 표출하고픈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 브런치에 손을 댔고 페이스북에도 끄적였다. 그러다 출판사의 눈에 띄어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쓴 글을 모아 PDF 전자책을 만들었다. 누군가 PDF 전자책을 보고 관련 강의를 제안했고, 한 출판사는 종이책 출간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미 다른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한 이후에 말이다. 모든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한 것뿐이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일어난 일은 결코 아니다. 단지 내가 쓴 글이 온라인을 돌아다니다 누군가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것처럼 한 편의 글은 또 다른 기회로 연결됐다.     


물론 글을 쓰고나서 사건수임이 엄청나게 잘 된다거나 내 생활이 몰라보게 변한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블로그를 통한 사건수임은 없었을 것이고 책을 출간하거나 강의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내 안에 어떤 능력이 있을지는 무언가를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수영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기 위해서는 물에 발이라도 담가봐야 한다. 해보지 않고서는 어떻게 될지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변호사로서의 글쓰기=사건수임’이라는 등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광고하는 게 빠른 길이라고 말해준다. 그게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다면 직접 글을 써보기를 권한다. 왜 글을 써야 하는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직접 써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고. 어떤 기회가 어떻게 찾아올지를.



※ 이 글은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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