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률정보만으로 블로그를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하는 ‘일’ 이야기로만 블로그를 가득 채운다면 과연 지속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업무의 연장일 뿐이니까 쉽게 지칠 것만 같았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자 취미가 됐으면 했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과 하는 일을 알리고도 싶었지만, 그보다는 글 쓰는 것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블로그에 일상을 공유하면 변호사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온종일 일만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변호사로서의 정체성도 있지만 변호사이기 이전에 사람 그 자체이다. 일상을 공유하면서 나라는 사람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블로그에 일상 글이 더 많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전문직 블로그로서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일상을 공유한다
처음에는 SNS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상을 공유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보고 그걸 사람들과 나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독서, 글쓰기, 시간관리, 자기계발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고, 육아하는 소소한 나의 일상을 <주간 문혜정>과 <독서노트>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쓰고 있다. 브런치에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느끼는 일에 대한 고민, 가치 등도 남기고 있다. 내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었고 나와 다른 견해는 내 시각을 넓혀주었다.
이렇게 쌓인 일상은 나만의 역사이자 기록이다. 단지 기록만을 위해서라면 각자의 컴퓨터 폴더에 저장하면 되지만, SNS에 일상을 공유한다는 건 기록을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록하면서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지 않을까. 법률정보만 쓰면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찾아오겠지만 꾸준한 소통은 힘들다. 일상을 공유하고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또한 글을 쓰는 즐거움이다. 내가 켜켜이 쌓아놓은 기록들을 보는 것도 뿌듯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일상을 응원해주고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 용기를 북돋기도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상을 그저 들여다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일상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나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심 있게 보면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정태일 작가는 《회사에서 글을 씁니다》에서 “두 번째 영화의 주인공인 패터슨은 일상을 치열하게 관찰하는 데 익숙합니다. 글을 쓰려면 패터슨처럼 관찰자의 눈으로 모든 것을 낯설게 보고 기록해야 합니다. 겉모습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같은 사람이 아니듯,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 보여도 365일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습니다. 글을 쓰려면 아주 조금씩 바뀌는 삶의 풍경을 예민하게 알아채는 감수성 훈련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일상을 쓰려면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 쓸거리를 찾아야 한다. 내 삶을 소위 말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찾아보면 일상은 새롭게 재구성된다. 글의 소재를 발견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나는 이런 과정 속에 일상을 새롭게 발견한다. 오늘도 잘 살았구나,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자기 위안과 격려는 덤이다. 어쩌면 주객이 전도되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 쓸거리 있는 삶이 된다.
일상 글을 통해 업에 대한 생각과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
나는 변호사인 내 업과 관련성 있는 분야를 일상 글에 녹여내려고 한다. 수사나 재판 과정 중에 느꼈던 심경,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서면에 담기 힘들거나 법정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어딘가 풀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글쓰기의 힘을 빌린다.
일상 글을 쓸 때는 꾸밈없이 솔직하게 쓴다. 물론 일상을 일기처럼 쓰지는 않았다. 나에게 일기는 나만의 비밀공간이다. 사람들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을 것도 같았다. 가끔은 모르겠지만 일상 글이라고 매번 푸념과 신세한탄만 늘어놓는 건 좋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 속에 자아 성찰과 고민이 엿보인다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나 역시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공감과 응원의 댓글은 큰 힘이 됐다.
글에는 글쓴이의 생각과 가치관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다.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면서는 책에 대한 내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게 변호사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등을 담아냈다. 이렇게 일상에 내 생각을 담으면서 흐릿하게만 느껴졌던 내 삶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내 생각과 가치관이 다듬어지고 있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이라는 책이 있다. 책은 사람들이 새로운 재능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는데 그건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해준다. 우리 모두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고 이 재능을 토대로 기술, 지식, 연습을 쌓아 올리면 그게 바로 강점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책에서 알려주는 34가지의 테마는 엄밀히 말하면 재능이다. 책은 자신의 재능을 더 갈고닦아 강점으로 만들면 행복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나의 강점(재능) 중 하나는 화합이다. 나는 소송을 주업으로 하는 변호사인데도 분쟁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소송을 싸워서 이긴다고 생각하지 않고 분쟁을 해결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의뢰인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이 무엇일지,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를 고민한다.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의뢰인도 있을 것이다. 보다 날카롭게 상대방을 대하기를 바란다거나 무조건 이기는 걸 원하는 의뢰인도 있다. 그런 의뢰인을 만날 때면 나 역시도 일하는 게 힘들었다. 무조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게 목적이라면 나를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화합’이라는 테마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내 생각과 가치를 공유했다. 실제로 블로그를 보고 나를 찾아온 이들 중에는 이런 나의 관점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사람들이 정보성 콘텐츠만을 보고 변호사를 찾는 게 아님을 알게 됐다. 내 생각을 공유하고 나를 온전히 보여주면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경험을 있는 그대로 쓰면 정보성 콘텐츠가 된다. 가령 읽은 책을 소개하는 데 그치면 정보이다. 내가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쓰면 그건 정보의 차원을 넘어서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통해 자연스레 내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사건과 의뢰인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전문분야의 글을 쓰더라도 일상을 공유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아무리 누가 추천해줘도 내가 끌리는 변호사, 함께 하고픈 변호사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매력이 있다. 일상을 공유할 때 인간적인 매력이 묻어나지 않을까.
※ 이 글은 출간 예정인 《변호사의 글쓰기 습관》(가제)의 일부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