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인생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내가 변하면 됩니다. 어떠한 결과를 두고 환경 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환경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직접적인 통제 영역 안에 있는 부분이라면 그 부분은 바꿀 수 있지만, 오히려 나의 통제 영역 밖이 훨씬 많습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독서실은 혼자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합니다. 그래서 에어컨이나 히터의 온도, 그리고 필기도구를 놓거나 책장을 넘기는 소리 하나하나 신경이 쓰일 수 있고, 예민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필기도구를 던지듯이 놓거나, 책장을 시끄럽게 넘기는 편이었고 이 습관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저는 독서실을 이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성향의 사람이었고, 그래서 저는 제 방에서 혼자 공부했습니다.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공부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예민함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이라면 독서실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라는 본질보다는, 환경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만 아니면 내가 더 집중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환경에 대한 것입니다. 그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소모적입니다.
조건에 대한 생각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집에서 공부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들 것입니다. 이를테면, 집 앞에서 누군가가 전화를 한다던가 이동 판매를 하시는 분들의 큰 목소리가 들릴 때도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저것만 아니면 될 텐데.’ 역시 너무나도 소모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방은 방음은 굉장히 잘 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근 원룸에서 전체 리모델링을 했던 것입니다. 철거하는 내내 소음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공사용 귀마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시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고, 집중해서 더 잘해보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시끄럽구나.’, ‘공사를 하는구나.’ 정도의 생각뿐이었습니다.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