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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Feb 01. 2023

법학을 공부하는 젊은이의 세 부류

어느날 선배가 보낸 카톡 메시지


어느 날 선배 변호사님이 페북에서 어떤 글 하나를 캡쳐해 보내주셨다. 글 내용은 이렇다.


라드부르흐 저, 최종고 역, 법학의 정신, 종로서적, 1983. - 최종고, 법학통론에서 재인용. 

독일의 형법학자요 법철학자였던 라드부르흐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에 오는 젊은이들을 관찰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첫번째 부류는 학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남들이 법을 공부하면 결코 손해는 안 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지망해 온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로마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법격언 "유스티니아누스가 명예를 준다"(Dat Justinianus Honores!)는 유혹에 끌려 '빵을 위한 학문(Brotwissenschaft)으로 법학을 선택한 자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별로 기대할 바가 못되며, 이들이 설령 법률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생활에 손해를 주면 주었지 이익을 주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는 더 이상 이러한 자들을 법률가로 받아들이기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두 번째 부류는 지식만 발달하고 인격성이 부족한 젊은이다. 이들은 대개 중,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낸 우등생들로서 부모의 권유에 따라 법과가 좋다니 당연히(?) 들어온 자들이다. 법학도가 된 그들은 실제적 흥미로 방해받지 않고 냉정하고 논리적인 성격 때문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한다. 이들은 법학자가 되든 법률실무자가 되든, 대체로 유능하다는 평을 받는다. 법률가의 과제가 매우 형식적이고 별다른 창조성을 요구하지 않는 한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전형적 법률가'라고 해도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라드부르흐에 따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번째 부류가 있다. 그들은 강렬하고도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철학, 예술 혹은 사회와 인도주의에 기울어지면서도 외부사정 때문에 부득이 법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이다. 예를 들면 가난하여 저술가나 학자와 같은 불안정한 생로를 선택할 수 없었거나, 혹은 예술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만 창작활동에 뛰어들 수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당분간 법학을 선택하면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시간과 정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틈을 이용하여 자기 본래의 취미방면에 정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법학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고 때로는 도중에 포기하고마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끝까지 법학을 공부하고 나면 누구보다도 훌륭한 법학자와 법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로스쿨로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조금은 특이한 이력 때문에 어쩌다 로스쿨에 가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렸을 적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대학교 4학년 즈음 남들과 같이 취업하여 빠르게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간 연극을 하느라 취업과 관련된 스펙은 전혀 쌓지 않았던 관계로 직업학교에 들어가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로스쿨에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고 법학의 실용성에 흥미를 느껴 즐겁게 공부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감사하게도 변호사가 되었네요. 아직까지는 제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선배는 이런 나를 염두에 두고 글을 공유한 것 같다. 아마도 그가 생각하기에 나는 세번째 부류에 해당될 것이다. 특히 '강렬하고 섬세한 감수성'이라는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종종 내 '강렬하고 섬세한 감수성'이 동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상담하다가도 서면을 쓰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울고 털어버려야 계속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억누르진 않지만, 나이 먹을만큼 먹고서 일터에서 엉엉 우는 꼴을 보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고, 무엇보다 나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가 무거워지는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며칠 전에는 선배님 연차가 쌓이면 눈물이 좀 줄어들까요? 넋두리를 했더랬다. 그러자 선배는 한껏 다정하게 "나는 저년차때도 변호사님처럼 자주 울지는 않았는데?"라며 나를 놀렸다. 


선배와 나는 작은 사무실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이제 벌써 일년 반째 같이 일하고 있다. 연차가 많이 나기도 하고 지성과 인품이 훌륭한 분이라 배우는 것이 많다. 보여지는 겸손함에 비해서 내공이 단단하고 마음 씀씀이가 너른 사람. 그런 선배가 나에게 보내온 메세지는 은은하게, 오래도록 위로가 된다.  "끝까지 법학을 공부하시오" 라는 당부 뒤에 붙은 말줄임표가 뜻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의 약함을 장점으로 이해해주고, 앞으로의 발전을 응원해주고, 성장할 나의 미래를 기대해주는 마음. 오늘처럼 일이 힘든 날에는 두고 두고 꺼내먹을 초콜릿 같은 마음. 이런 선배와 함께 일한다는 건 어느 직장에서도 만나지 못할 행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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