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16 보이지 않는 세계가 크다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by lawyergo

[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16 보이지 않는 세계가 크다


늙으면 죽는다. 젊을 때 깨쳐야 한다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건강은 순간이라서 믿을 수 없고, 생사는 호흡지간에 있다. 인생이 마치 별 것 있냐지만 언제다시 기약하지 못하는 거라서 귀한 인생을 사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살면서 생존본능에 이끌려 시간을 잘못 허비하기도 하고 고비도 맞이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젊었을 때의 체험이 그때마다 경계에 걸리지 않고 바람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새벽 3시다. 오대산 중대이다.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문밖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방에 있는 사람들도 한두 명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새벽바람이 차다. 단풍이 한창 들고 있는 10월이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랜턴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저마다 다 사연과 소원을 가지고 이 꼭두새벽에 찬바람을 맞으면서 훈기도 없는 법당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평범한 곳이라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는 몰려들지 않을 것이다. 워낙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전국각지에서 저마다의 사연과 소원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부처님의 사리를 묻어놓고 대신 불상을 모시지 않는 곳을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4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이다. 그 중에서도 오대산 적멸보궁은 조선시대 때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설화를 가지고 있다. 박문수는 스님들에 대하여 놀고먹는 사람들이라는 반감을 평소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비로봉 정상에서 산의 기운을 훑어보더니, 오대산의 모든 정기가 적멸보궁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저러니 빌어먹고 살아도 되는구나.’


적멸보궁과 사람들이 묵고 있는 중대와는 시간상으로 3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하루에 4번씩 기도를 하므로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밥은 한두 가지 정도의 나물에 비벼먹는 것이 고작이다. 여기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잘 먹고 잘 쉬면서 기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법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음률에 맞춰 따라하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경건해진다. 새벽바람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지금이야 능숙하게 따라하지만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계기를 처음 만들어 준 곳이 전라남도 곡성군에 있는 옥과 용주사였다. 지금은 그때의 인연들이 모두 흩어지다 보니 그 뒤로 한 번 가보았지만 쓸쓸한 느낌이었다. 절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가장 좋은 절은 나를 반겨주는 절이듯이 인연들이 모여 있을 때가 제일 좋은 때였다.


1993년 여름이었다. 군대제대 후 처음으로 2차 시험을 본 직후였다. 1차 합격한 후 곧바로 본 시험인지라 아무래도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마침 그때 친구로부터 절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머리나 식힐 겸 찾아갔다. 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그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인연이 되려고 그런지 왠지 그곳이 좋아보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절이나 기도가 뭔지 몰랐다. 법당에 들어가서 예불하고 그러는 것은 나이 많은 어머니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애당초 예불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관심이 있다면 고시공부와 땅을 파는 것이었다. 나이는 30이 넘었는데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고시라는 막연한 것에 매달려 세월과 정력을 소모하고 있는 나의 젊음이 너무나 답답하다보니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곡괭이로 땅을 팠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잡담을 할 상대가 없는 절이 공부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시간되면 밥 먹고, 공부하고, 어둠이 깔리면 잠을 자고, 방에 TV도 없다보니 공부 외에는 시간 보낼 것이 없었다. 공부만큼은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었다.


절에 들어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였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어느 날 문득 법당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저녁공양을 한 후 산보를 마치고 오는 시간이 꼭 저녁예불 시간이었다. 어둠이 깔린 법당 밖으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염불소리가 그동안 내 가슴을 알게 모르게 적셔주고 있었다.


예불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법당 문을 열었다. 법당문은 아주 크고 무거웠다. 문고리도 컸다. 그런 육중한 문을 문고리에 힘을 주고 열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내 마음이 열린다는 증거였다. 시비(是非)를 떠나 머릿속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하고 싶었을 뿐이다.


생전 처음 예불이라는 것을 하다 보니 스님들이 하는 대로 곁눈질 해가며 눈치껏 따라하였다. 절하면 같이 절하고, 염불하면 입만 뻥끗 뻥긋하는 식으로 흉내만 내었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른 새벽에 하는 예불은 특히 경건한 맛이 더 나는 것 같았다. 무여스님의 쇳송을 치면서 하는 염불은 너무 좋았다. 스님이 법당 안의 조그마한 종을 치면서 염불하는 쇳송의 운율이 가슴을 적셔주었다. 스님의 아침쇳송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응어리진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려 말기의 선승이었던 나옹 혜근(懶翁 慧勤) 스님의 불교 가사는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나~무~~아미~타~~불”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빼먹지 않았다. 한두 달 지나니 머리가 무척 시원해졌다. 머리에 털 끌만한 열기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공부도 잘 되었다. 한번 방에 들어가면 밥 먹을 때 외에는 거의 나오는 일이 없을 정도로 힘이 생겨졌다. 방문을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가부좌를 튼 채 한번 앉으면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에 할 수없이 방문을 나왔다. 자는 시간은 정확히 10시였다. 1분 1초도 틀리지 않았다. 때 되면 정확히 잠이 오고,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로 누우면 정확히 다음날 새벽 4시였다.


이렇게 일심(一心)으로 공부하다보니 주위 인연들도 나를 위해 마음을 써 주었다. 공양주 보살은 떡 하나라도 더 주려 했고, 혜각 스님은 기도를 열심히 해 주었고, 무여스님은《관세음보살보문품경》을 읽어주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이 크다고 하였다.


처음 며칠은 그분의 성의가 고마워 약속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내려갔었다. 그런데 그 경은 한번 읽는 것만으로도 30분이 더 넘게 걸렸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부터는 오히려 그분의 성의가 부담이 되었다. 그분은 잘못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고시 합격은 부처님이 시켜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지금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를 해야 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달리 생각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잘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했다. 마음으로 깨닫는 지혜의 세계가 얼마나 큰지를 모르고 오로지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생긴다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다 보니 합격이라는 결과물만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불행 속에 행복이 있고 번뇌 속에 해탈이 있다고 하였다. 추위와 더위가 나를 피해가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추위와 더위를 피해가야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장애들을 하나하나 녹여버리다 보면 저절로 될 것인데,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일생에 몇 번 없는 기회를 눈이 멀어 발로 차버리는 격이었다. 상대적인 경계에 머물러 있다 보니 절대적인 참나(眞我)를 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광대무변하기 때문에 마음을 크게 쓰면 한이 없고, 인색하게 쓰면 바늘귀도 못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 당시 나의 마음 씀씀이는 바늘귀나 간신히 들어가는 정도였을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가을이 익어가듯이 보이지 않는데서 내 마음도 익어가는 기분이었다. 가을햇살이 너무 좋은 어느 날이었다. 방 안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책 한권을 들고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갔었다.


저 높은 하늘과 주변 들판, 그리고 주변 산을 가릴 것 없이 온통 가을색깔로 한참 익어가고 있었다. 단풍도 곱게 물들었다. 저 멀리 절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보였다. 점잖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낮술에 해롱해롱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희한하게도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관세음보살보문품경」에서 나오는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들로 보였다.


‘아! 저 사람들이 뭔가 나에게 암시를 주기 위해 오는 불보살의 화현들이구나.’


사람들이 달리 보였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뭔가를 암시해주러 오는 불보살들로 느껴졌다.


지금은 열반하신 청화 큰스님이 그 당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훨씬 크네.”


그러나 그때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 해 그렇게 열심히 했건만 그 다음해에도 또 한 번의 실패를 겪었다. 마지막 순간에 치명적인 시행착오를 범한 당연한 결과였다. 아직도 내 앞길을 가리고 있는 두터운 장애를 넘어가기에는 시간과 정성이 더 필요하였다. 법(法)을 공부하는 사람이 물(氵)이 흘러가는(去) 이치를 모르고 지식만을 가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성공만 한 실패는 없다’는 말이 있다.


성취의 순간은 대단히 짧다. 어떤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허탈해지기 마련이다. 또 다른 목표를 정하여 달성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그러나 성취는 못했어도 불변하는 이치를 얻었을 때는 성취감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빅토르 위고가 남긴 명작 《레 미제라불》끝 부분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어려웠지만 앞으로 남은 길은 행복할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 말처럼 우리가 무한한 마음으로 복을 지으면 무한한 행복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상묵스님의 금강경 강의 참조)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나뭇잎이 흔들리지 않는다 해서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리게 하지 나뭇잎이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한 단면일 뿐이다. 얻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증거이다. 내 앞에 놓인 업장들을 하나하나 소멸하다 보면 저절로 합격의 소식도 들리기 마련이다. 잘되고자 하면 잘되는 이치를 알 필요가 있다. 고시 합격이나 소원성취가 자꾸 늦어지면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나의 업력이 장애물(障碍物)이 되어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열심히 했는데도 왜 안 되지?’,


‘남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왜 나에게만 이런 혹독한 시련이 닥치는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혹 내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허공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머리로 계산하는 것은 변수가 많다. 계산대로 되면 인생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까 인생이 어렵다고 한다. 오묘한 이치를 깨닫기엔 한 번뿐인 인생도 너무 짧은 시간이다. 언제까지 안 된다고 해서 실망만 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힘을 믿을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신장(神將)들이 나를 지켜준다. 아마 이치가 똑같지 않을까? 사람들도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을 좋아하듯이 신장도 그럴 것이다. 그 믿음이 어떻게 보면 나를 자유롭게 해 주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하느님이 인도하는 대로’라는 표현 그대로이다. 구름처럼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맡긴다고 생각하면 불안보다는 오히려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은 어떻게 보면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일 수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나를 맡겨 버리면 어떨까? 순수의 파장이 곧 에너지이고, 그 밀도는 엄청 높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어떤 식으로 변화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시에는 우연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필연의 연속이었다고 보인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을 더욱더 가지게 된다. 나에게 원이 있다면 내 인생을 진짜 주인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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