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2년차 ]

조세전문변호사 고성춘

by lawyergo

[사법연수원 2년차 ]

2년차가 되면 시보생활을 나간다. 법원, 검찰, 변호사, 기타 유관기관연수를 각각 한두 달씩 하게 된다. 지금 기억나는 일은 딱 두 가지다. 법원시보를 하던 때였다. 부장판사님과 첫 대면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부장님이 술 한 잔을 따라주었다. 순간 고민을 하였다. 오로지 하나였다. 이 술을 먹느냐 마느냐였다. 이게 나에게는 인생의 갈림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술을 먹으면 세상살이에 적응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해야 하는 거였다. 그때까지 내내 출가를 하느냐 마느냐로 계속 고민이었고 그 고민을 운동으로 분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확실히 발을 못 딛고 양발을 이쪽저쪽에 걸쳐놓은 불안정한 모습이 불행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양자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보라고 하면 고민이 될 것 같다. 그때는 그 고민의 마침표를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도피하고 싶은 얄팍한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 술을 받아먹고 그 순간부터 술자리에서 술을 사양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검찰시보 때는 검찰에서 술을 잘 마신다는 부장검사님을 따라 폭탄주를 10잔 넘게 마셔보기도 했다. 술을 한번 입에 대기 시작하니 술자리가 왜 그리 많은지. 그것도 내가 돈 내고 먹는 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결코 공짜가 아니라 마음의 빚이고 또 그만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어찌 모를까마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일이 적지 않다. 미안한 일도 많을 뿐만 아니라 결국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그때 인연이 된 부장검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보통 우리들을 시보라고 부르는데 그분은 어떤 경우에는 나보고 “중시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고시보는 변호사하려고 검찰시보하러 온 거야”라고 뼈있는 충고를 해주곤 하였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철학이 깃든 말씀이 있다.

“나는 절의 일주문을 들어갈 때 양쪽으로 서있는 사천왕상들의 발밑에 깔려 고통스러워하는 아귀들을 보면 기분이 좋단 말이야. 몇 생을 나눠서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을 당대에 한꺼번에 받게 해준다는 것은 그를 위해서 좋은 것이야”

이 말을 들으면서 얼른 생각나는 불교설화가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옛날 어느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마을로 탁발을 내려갔다가 홀 어머님을 어렵게 모시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는 머슴총각으로부터 평생 모은 새경을 시주받았다. 당연히 그 스님은 분명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복은커녕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그 머슴도 장님이 되었다가 앉은뱅이가 되었다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부처를 원망하면서 법당안의 불상을 도끼로 찍어버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도끼는 어느 누가 와도 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침 그 고을로 신임사또가 부임하면서 그 사실을 알고 절에 들러서 그 도끼를 뽑았다. 그동안 아무도 못 뽑던 도끼가 그 사또에 의해서 뽑힌 것이었다. 마침 스님은 절소식이 궁금해서 절로 돌아와 먼발치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 설화의 주제는 받아야 할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당대에 한꺼번에 받느냐 아니면 여러 생에 나눠서 받느냐의 차이였다. 복 있는 사람은 그래도 당대에 받고 다음 생은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 머슴은 금생에는 별 볼일 없이 살다가 갔지만 복을 지은 공덕으로 여러 생의 비천한 업을 소멸하고 다음 생에 원님으로 된 것이라는 애기다.

사실전개는 허무맹랑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 숨겨있는 진리는 맞는 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설령 살아서 대우받지 못해도 죽어서 대우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성경에도 애통한 자에게는 하늘의 복이 있나니 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안다.

부장검사님이 하신 말씀의 취지가 죄를 지은 사람에게 그에 상응한 벌을 줌으로써 그 고통으로 인해 자신의 업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의미일 것이다. 그 분은 그렇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거고. 단수가 높아도 상당히 높은 분이다. 철학이 깃든 검사라고 할까. 당시 그 분의 말씀을 들을 때는 자기합리화도 고급스럽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사람 잡아 넣는 것을 꼭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가볍고 단견이라는 것이 감사원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느끼게 되었다. 현재 그분은 돌아가셨다. 2009년 3월이었다. 검사실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분의 빈소에 달려가 보니 많은 검사들이 와 있었다. 그분의 49재는 그분이 평소 다니던 절에서 하였다. 25년간 검사생활을 했던 강영권 부장검사다. 검사스럽다는 그런 부류의 검사가 아니다. 그분은 자신을 불자라고 말했다. 이제는 누가 나보고 불자냐 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특수부에는 시보를 받지 않는 관례를 깨고 시보로 받아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이 대해주셨다. 그분은 나의 고민을 간파하고 일부러 술자리에 데리고 다니셨다. 그리고 혼내기도 하였다. 단순히 부장검사와 시보의 관계가 아니었다. 검찰시보를 다 하고 떠날 때 검사실 방에서 큰 절을 올렸다.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국세청에 재직할 때 그분의 영향이 컸다. 서울지방국세청 국과장들 회식자리가 끝날 무렵 조사국장님 한 분이 내 앞자리에 앉으시더니 강영권 부장님을 아냐고 물었다. 당신 칭찬을 많이 하였다는 말을 해줬다. 나중에 그 조사국장님은 국세청장이 되었다. 국세청 재직시절 직원들과 부딪쳐 뒷말이 나올 때마다 그분이 엄호를 해주셨다. 그분은 어느 날 결재를 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말했다. “고과장! 부딪치지 마.” 부장님은 검찰시보를 할 때 추천서를 써주겠다며 검사를 권했고, 국세청 재직 시에는 알게 모르게 뒤에서 국세청 국장들에게 나를 외호하는 신장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이 모두가 인연법이다. 계산해서 나올 일이 아니다. 생전에 출간한 저서는 「웃어라 인생아」, 사후에 후배검사들이 글을 모아 출간한 유고집으로는 「그의 길에 기대어 웃고 울다(강영권 검사가 사랑한 세상)」 와 「그의 글에 기대어 웃고 울다(강영권 검사가 사랑한 인생)」이 있다. 요즘 같은 시절 그런 검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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