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가 중요한 이유]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사바(娑婆)세계라 하고 거기서 사는 존재를 중생(衆生)이라고 한다. 사바는 참고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번뇌와 고통에 시달리는 곳이 사바세계다. 주로 인간을 말하는 중생의 뜻은 주객전도의 삶을 사는 존재를 의미한다. 피 혈(血)자와 돼지 시(豖)자가 합성되어
중(衆)으로 만들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탐심이 강한 존재라는 말이다. 먹는 것에 집착하는 돼지 모습을 보면 衆의 의미가 쉽게 다가온다. 인간은 중생이기때문에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다. 남을 위하는 것은 본능이 아니다. 그래서 주객전도의 삶을 산다고 한다. 없는 것을 있다하고 있는 것을 없다 한다. 나라는 것조차도 없다고 부처님이 아무리 말씀해줘도 알아 먹기 힘들다. 중생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만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화택(火宅) 즉 사는 집이 불타고 있으니 불타는 집에서 얼른 나오라고 말씀하지만 중생에겐 들리지 않는다.
중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를 벗어날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도심(道 心)이라고 한다. 의외로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내기에는 사바세계 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한다.
근데 생로병사의 과정을 다 거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죽어도 자연사는 인생이 무상하다 느끼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비명횡사는 갑작스런 죽음이다 보니 망자가 갈 길 잃은 존재가 되어 구천을 떠돈다고 한다. 명대로 살지 못하고 갑자스런 횡액으로 죽는 게 非命橫死다. 단어만으로도 좋지 않을 것 같다.
흰머리가 나면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보낸다는 신호라고 한다. 20년 전에 청화스님이 한 법문이다.
지금에서야 보니 生에서 老로 넘어가는 시점이 흰머리인 듯 하다. 노화가 한번 시작되면 病이 올 거고 그 다음에는 死가 올 것이다. 급류에 휩쓸리 듯이 죽음까지 한순간일 것 같다. 백세시대는 말뿐이고 실제 건강나이는 65세 정도라는 말을 들었다. 75세면 모든 기능이 정지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살면서 별짓을 다하는 이유는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기 때문에 원효스님은 급하구나 급하구나 말씀하였다. 금생에 이 몸 보내면 언제 다시 몸을 받아 자신을 구제할까 안타까워 하셨다. 구제는 남이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거라고 한다. 구제도 힘 있을 때 해야한다는 점에서 보면 시간이 급하다 하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삶이 오래가지 않아보인다. 힘 떨어지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전도몽상에서 깨어나오려면 힘있을 때 열심히 몸을 쓰고 땀을 흘리면서 정진해야 한다. 지혜도 젊었을 때 열심히 정진한 결과로 생기지 늙어서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늙으면 오히려 어린 애가 되어진다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직 건강하다고 남을 비판하고 냉소를 퍼붓고 시기질투하고 해봐야 이슬보다도 못한 삶이다. 중생은 남을 위하는 존재가 아니고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인데도 남을 위하고 세상을 위한다고 한다. 내가 볼때 남을 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구제해야 남도 위하는 것 같다. 남을 비판하고 저주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실리가 있다. 참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중심을 잡는 삶이 가능하다. 남이야기는 잘해도 정작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이들이 남을 걱정하고 나라를 위하고자 하니 세상이 바로 설 리 없다. 참회가 그래서 필요하다. 특히 공직자들에게 필수다. 무슨 잘못이 있어도 사과할 줄 모르고 대놓고 뭉개버리는 이유는 돼지같은 존재들이 공직자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