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잘못된 고정관념

-미래세대들을위한고민

by lawyergo


어느 강의를 TV에서 우연히 들었다. 지금의 자식세대들은 미래의 인공지능 같은 기계들과 경쟁이 안 되는 영어 수학 같은 과목에 매달려 정작 기계와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강의 핵심이었다. 그러니 기계가 못하는 능력들을 키워야 장래에 취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노력해야 먹고 살 수 있는지? 1980년대만 해도 이름있는 대학 학벌만으로도 원하는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 열풍이 지나가서 그런지 학벌이 대학원까지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사까지 올라가서 경쟁의 도가 천정을 찍더니 이제는오히려 경쟁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유치원까지 내려간 실정이다. 그렇다 해서 1980년대의 월급이 2010년대라고 해서 더 올라간 것도 아니다. 경쟁이 치열해져 실력이 더 나아지면 대우도 비례해서 더 좋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을 더 아쉽게 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배짱을 부리지 못하고 가슴을 활짝 펴지 못하는 이상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떤 이는 "어차피 너희들은 노예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단지 질 좋은 노예를 뽑고자 함이야."라고 조롱하는 말을 하다가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돈 있는 부자들 입장에선 보면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을 보면 마치 하늘에서 지옥 중생들을 보는 느낌일 것이다. 경쟁을 하면 할 수록 생활이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면 결국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무한대로 포기하는 세대라는 새로운 신조어가 생기기도 하였다. 가슴 아픈 일이다. 필자와 같은 50대 사람들은 그럭저럭 한 시대를 살았지만 자식들 세대를 보면 뭐라고 답을 내줄 수 없고 진로를 지도하기도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필자 나이 38살때 썼던 글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1994년 이후로 뉴질랜드에 여러 번 다녀올 때마다 어린 한국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가족전체가 이민 온 경우도 있었지만 학생 홀로 홈스테이(Homestay)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버지는 한국에 있고 어머니만 따라 온 경우도 있었다. 경쟁에 지쳐있던 나에게는 “어디를 가도 경쟁이구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머니들의 극성스러움을 대할 때마다 “만일 그분들이 공부를 질리도록 해 본 경험이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 보곤 했다.

홈스테이를 하는 어느 학생이 말하기를 “부모님이 와 있으면 주인아줌마가 잘해주고 안계시면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킨다”고 하였다. 어린 나이에 혼자 몸으로 객지생활을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기특해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해 보였다. 공부하면서 가슴 깊게 느낀 것 중의 하나가 “만일 내가 자취나 하숙을 안 하고 어머니와 같이 생활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분명 합격을 빨리 했을 것이다. 같이 공부했던 주위 고시생들만 보더라도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수험생은 책만 보고 공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이 절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이 그렇게 되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수험생보고 그런 환경을 만들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수험생 옆에 어머니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중 어느 쪽이 수험생을 더 안정시킬까. 결론은 뚜렷할 것이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혼자 객지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은 공부 외의 딴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선 “내 자식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고 싶겠지만 부모보다는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부모의 믿음에 배신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오직하면 럭비공과 자식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하겠는가.

이국땅에서 언어의 벽, 인종차별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향수병이 짙어갈 때 이를 악물고 공부에 더 매달려서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해보려는 학생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방향감각을 한번 상실하기 시작하면 이성, 술, 담배는 물론 마약에도 손을 댈 수 있다. 외국은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영어로 그 곳 아이들과 경쟁하느라 겪는 고통과 압박감은 얼마나 크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낮선 땅에 이민을 보내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의 입장에선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그 곳 백인 사회에 진입하여 성공하는 것이 최선의 바람이겠지만 그럴 정도 능력이면 우리 사회에서도 한자리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다시 한국으로 귀국시켜 영어로 한 몫 하게 하겠다는 것인가. 과거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이제는 영어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 은행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토익 900점이 넘으면서도 떨어지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단지 면접 볼 수 있는 자격정도에 불과했다.

둘째, 외국에서 자란 학생들이 한국의 문화 특히 조직문화에 적응하기가 쉬울까.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영어 하나만 잘하고 빈약한 전공실력이라면 한국에서도 생존하기가 어렵다.

셋째, 그들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므로 다시 또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일상 생활하기는 불편함이 없을지라도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어둡거나 한국적 정서를 겪어보지 않았다면 한국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모 다국적기업 인사담당은 “외국기업이지만 한국 사람을 상대로 영업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면 채용되기 어렵다” 며 “유학파이기 때문에 자동 취직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한국특유의 문화적 폐쇄성과 인맥중심의 풍토 때문에 그런 것이 없는 조기유학파나 이민2세들은 취직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즈음 국내 각 대학의 국제대학원이나 특수 대학원을 중심으로 “한국화” 교육을 다시 받는 역유학이 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한 번은 사업하시는 분이 찾아 오셨다. 아들과 부인은 모두 미국시민권자인데 본인만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들이 모 대학교 특례입학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보고 어떻게 아는 사람을 통해서 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하였다. 황당하였지만 호기심에 “왜 남들은 돈을 들여 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는데 미국에 있는 애를 굳이 한국에서 교육시키려고 합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그 분 하시는 말씀이 “한국에서 학교를 나와야 인맥이 형성되지 않습니까. 한국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였다. 며칠 후 『부정특례 입학자 적발』이라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아이슈타인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의 발음은 학생이 듣기가 무척 힘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그를 영어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경쟁이란 다른 사람과 대체성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남들도 다가는 학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을 정도의 전공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유학을 가야 하는 것이지 영어하나만이라도 건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는 자식의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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