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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범행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

차용금 사기를 중심으로

by 조영진 Dec 24. 2024


  “나는 돈을 빌린 것일뿐 사기를 치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피고인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보통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은 내가 돈이 없는 상황일 때가 많고, 돈을 빌릴 때는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기꾼이라고 보긴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민사소송은 오래 걸리니까)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고, 이를 처벌을 하는 것이 옳을까? 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주말 중 여유시간을 이용하여 관련 논문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이종수 변호사 님이 형사정책연구에 집필하신 '채무불이행적 사기죄의 제한적 해석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읽게 되었는데, 위 논문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인용합니다.

사기죄는 2018년도 범죄통계 상으로 (1) 단일범죄 중 그 수가 가장 많고, (2) 6개월을 초과하는 장기사건의 비율도 가장 높은 반면, (3) 기소율은 25.48%로 비교적 낮으나, 2018년 한해 동안 이루어진 전체 고소사건 중 37.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고, 실무상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민사소송과 함께 형사고소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더불어 판례가 기망행위를 지나치게 포괄적이고도 추상적으로 보고 있어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대법원은 사기죄의 기망행위를 “널리 거래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대법원 1984. 2. 14. 선고 83도2995 판결)라고 하여 사기죄의 보호법익을 지나치게 넓게 보는 한편, 고지의무는 신의칙이라는 일반원칙에서 도출하고, 특히 부작위에 의한 사기죄의 작위의무와 관련하여 “법령, 법률행위,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 기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인정된다”고 하여 신의성실이나 조리에 근거한 작위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법률개념인 보증인의무를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일반개념을 근거로 인정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자유시장 경제체계 아래에서 거래 당사자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지식이나 경험을 습득하여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정보나 지식에 대한 고지의무를 부과하여 형사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특히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라는 것은(대법원 1983. 9. 13. 선고 83도823 판결 등), 민법상 계약해제의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있어도, 형벌권 발동의 기준이 될 수는 없으며, 결과적으로 범죄의 성립여부를 상대방의 의사에 맡겨놓게 되는 불합리를 초래하는 것이다.

더구나 민사법에서도 당사자 간 법률관계를 해석함에 있어 바로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근거를 찾는 것은 일반조항으로 도피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최후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고, 대법원 역시 신의성실의 원칙이 갖는 최후수단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다33224 판결 참조), 형벌을 통하여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형사법에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 민사법보다 더욱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다.

결국 ‘경험칙상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당해 법률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한 경우’라는 것은 민법상 계약해제의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어도, 형법권 발동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범죄의 성립여부를 상대방의 의사에 맡겨놓게 되는 불합리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기죄의 조문을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제347조(사기)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법 제347조 규정 상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기만 하면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기망행위와 관련하여 법원은 사기죄의 기망행위를 “널리 거래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대법원 1984. 2. 14. 선고 83도2995 판결)라고 하여 사기죄의 보호법익을 넓게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자칫 상대방의 의사에 의존하여 기망행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여지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위 논문의 주된 문제의식으로 보입니다. 즉, 신의성실의 원칙과 같은 일반조항을 기준으로 사기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하는 대법원의 입장은 재고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특히, 차용금 사기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기본적으로 “차용금의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차용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피고인이 차용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면 그 후에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할 뿐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고, 한편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편취의 범의의 존부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아니하는 한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7도10770 판결). 다만, 그에 관한 소명은 결국 피고인이 어느정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결국 "단순 차용금 사기"로 기소가 된 분들의 경우(명시적 기망행위가 없고, 용도를 속인 것이 아닌 경우에 한합니다),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하는 쟁점은 '차용 당시 변제의사와 능력이 있었느냐'의 문제입니다. 다만, 단순한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한지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이끌어내려면, 사실상 피고인 측에서 (1) 차용당시의 변제능력(당시 소득 증빙 등) 등에 관한 여러 반증을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이며, (2) 변제의사와 관련해서도 차용 이후 어떤 사정이 생겨 돈을 변제하지 못한 것인지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설명함으로써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기 사건의 경우 일단 기소가 되면 무죄가 선고되는 일은 극히 드문데, 이는 사기의 '기망행위'에 대하여 해석이 비교적 엄격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죄형법정주의나 형사 처벌 제도의 취지를 고려하여 보다 엄격하고 일관된 법해석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고소, 고발이 민사소송의 특별절차 정도로 활용되는 현실은 수사기관의 업무 과중화와 더불어 자칫 사회의 형벌만능주의로 흐를 수 있는 길이므로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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