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재판은 어떤 순서로 진행될까? (3)
다시 재판정입니다.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인정합니다’ 또는 ‘부인합니다’라고 답변하였을 것입니다. 판사가 검사에게 증거 신청을 하라고 하면 검사는 그간 수사한 기록들의 ‘목록’을 피고인 측에 줄 것입니다.
목록을 받자마자 판사는 피고인 측에게 ‘검찰 측 증거에 대한 의견은 어떠냐’고 묻습니다. 증거에 대한 의견을 내라니, 참 난해한 부분입니다. 증거는 증거이지, 왜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으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법조인들도 어려워하고,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는 영역입니다.
※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증거가 제출될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겠지요? 우리 형사소송법은 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 등에 대해서 변호인 또는 피고인이 열람하고 복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266조의 3 제1항). 변호인이 있는 경우 피고인은 열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에는 ‘전문증거 배제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실을 경험한 본인이 직접 법원에서 진술하지 않는 한 유효한 증거로 보지 않겠다는 원칙입니다. 물론 예외적으로 전문증거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으나, 그 경우 특별한 요건을 충족하여야 합니다(형사소송법 311조~316조 참조). 원칙은 전문증거는 배제하는 것이므로 증거들 중 일부는 우리가 ‘부동의’하여 판사가 증거로 삼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을’이라는 사람을 사기죄로 고소한 경우, 경찰은 ‘갑’이 제출한 고소장과 증거를 토대로 고소인의 진술조서를 받습니다. 그 후 ‘을’을 소환하여 피의자신문조사를 합니다.
그래서 형사재판에서 제출되는 기록에는 통상 고소장, 고소인 제출 증거, 고소인 진술조서(경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을’이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이라면 ‘갑’에 대한 고소장과 진술조서를 부동의할 수 있고, 그 경우 전문진술 배제법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증거로 쓸 수 없게 됩니다.
다만 ‘갑’이 법정에 직접 나와 고소장이나 조서에 적힌 내용대로 진술한 것이 맞다(진정성립이라 합니다)고 확인하고, ‘을’에게 갑의 진술을 반박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고소장의 경우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5항에 따라 같은 조 제4항이 적용됩니다)에 따라 증거로 사용될 수 있고 판사가 이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검사는 피고인이 부동의하는 증거가 있다면, 해당 전문증거의 원진술자에 대해 기계적으로 일단 증인신청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만약 어떤 진술증거에 대해 부동의할 경우 그 진술자가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리하면 증거에 대한 의견은 보통 수사기관에서의 피의자, 피해자, 참고인 조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절차라 할 수 있고, 피고인이 피해자 또는 참고인 조서에 부동의할 경우 해당 진술자가 법정에 나오기 때문에 증거인부 절차는 쉽게 ‘피해자 진술조서, 참고인 진술을 법정에서 듣고 반박할 기회를 갖겠습니까?’라는 질문이라고 바꿔 생각하시면 쉽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인’하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고소인 진술 등 전문증거에 대해서 ‘동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무상 ‘동의하되 입증취지 부인’이라고도 많이들 표현합니다. 원진술자를 증인으로 불러 반대신문을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고, 다른 증거들을 토대로도 고소인 진술 등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경우 주로 내는 의견입니다.
실제 제가 수행한 사건들 중 증거에 대해 모두 동의하고도 무죄를 받은 사건이 많습니다. 이는 판사가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을 살펴보았음에도 오히려 피고인의 변소가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증거에 대한 의견은 기술적인 부분이므로 법률전문가인 변호인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