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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영 변호사 Sep 26. 2022

법률 서면에 물음표를 써도 될까?



로스쿨에 재학 중일 때 '리걸클리닉' 과목을 수강하였던 적이 있다. 위 과목을 수강 신청하였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상민 변호사님께서 위 강의를 맡으셨기 때문이었다.

위 과목의 과제물로 준비서면을 작성해서 제출한 일이 있었는데, 나는 설득력 있는 변론을 위해 준비서면에 "반문"을 기재하면서 물음표를 썼던 일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위 과제에 대한 강평이 있었는데, 이상민 변호사님께서 서면에 물음표는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내가 기억하는 워딩은 "준비서면에 물음표를 쓴 사람이 있는데, 서면에 물음표를 쓰는 것은 좀 그렇고, 의문문을 쓰더라도 뒤에는 마침표를 찍는 것이 좋겠습니다" 였다).

아마 당시까지 일반적으로 법조계에서 통용되던 보수적인 관행에 따른 것이었으리라.

그 후 나는 변호사가 되고 나서, 준비서면에서 반문을 하고 싶을 때마다 위 가르침이 생각나서 '의문문이므로 당연히 물음표를 쓰고 싶은데 법률 서면에는 물음표를 쓰면 안되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문장의 형식이 의문문이었음에도 위 가르침에 따라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를 썼었는데, 아무리 읽어보아도 마침표로는 '반문하는 맛'이 나지 않아, 어느 순간에서부터는 물음표를 쓰기 시작하였다(증인신문사항 역시 나는 기존의 관례를 깨고 의문문 옆에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를 찍어서 제출하여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도 검찰에 제출할 의견서를 쓰면서 '반문'을 기재하게 되었는데,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위와 같이 입장을 정한 후에도 쓸 때마다 고민은 되었다), 고민 끝에 물음표를 썼던 일이 있다.

어제 저녁에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국어의 어법상 의문문에는 물음표를 쓰는 것이 당연함에도(이 글의 제목에서와 같이), 왜 법률 서면에는 물음표를 써서는 안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존재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달리 타당한 이유가 없는 위와 같은 고정관념은 이제 깨뜨려질 때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아무리 보수적인 법조계라 하더라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제는 변호사도 법원도 바뀔 때가 되었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다.

위와 같이 나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것이 바로 어제 저녁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오늘 박사 수업 발표 준비를 위해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1. 4. 22.자 2017마6438 전원합의체 결정문을 보던 중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아래와 같은 대법원 판시를 보게 되었다.

"대법원이 선언한 기존 판례는 상고장 부본을 송달하는 현재 대법원의 실무와도 모순된다. 민사소송법 제425조는 “상고와 상고심의 소송절차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제1장의 규정을 준용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고심 소송절차에도 항소장심사권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402조가 준용된다. 즉 민사소송법 제402조라는 동일한 법 조항이 항소장심사와 상고장심사에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그런데 현재 대법원 실무는 상고장 부본이 피상고인에게 송달되지 않는 경우 상고인에게 주소보정명령을 하지 않고, 그에 따라 주소보정명령 불응을 이유로 한 상고장각하명령도 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발송송달이나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상고장 부본을 송달하고 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통해 항소심에 대해서는 항소장 부본의 송달불능 시 주소보정명령과 항소장각하명령을 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와 다른 내용의 재판을 하고 있다. 대법원이 하급심에 대하여 스스로는 하지 않는 재판을 요구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동일한 법 조항에 대해 상호 모순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국민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수 많은 법원의 판결문들과 결정문들을 보아왔지만, 법원이 그것도 대법원이 결정문 판시에서 물음표를 쓴 것은 처음 보았다(아마도 지금까지의 모든 판례를 통틀어서 최초가 아닐까 싶다).

위 반문 및 물음표는 위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대법관 박상옥, 대법관 이기택, 대법관 이동원이 개진한 반대의견에서 나오는 판시인데, 얼마나 다수의견에 대한 '반문'을 하고 싶었으면 위와 같은 표현(법원 내부에서조차 동일한 법 조항에 대해 상호 모순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국민들이 과연 납득할 수 있겠는가)을 써가며 이례적으로 물음표까지 찍었을까?

위 결정에서 보았듯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에서조차 물음표를 썼으므로, 법률서면에 물음표를 써서는 안된다라는 기존의 이상한 구습 내지 고정관념은 이제 더 이상 따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논외로, 다수의견 -> 반대의견 -> 보충의견으로 이어지는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문은 가히 논리의 정치함의 끝을 달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문인데, 마치 대법관들끼리 본인의 자존심을 걸고 흡사 법논리의 진검 승부를 벌이는 것과 같은 정도의 느낌까지 준다.

재미있는 것은, 다수의견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항소인의 소송수행능력'이 갑자기 반대의견에서 등장하는데, 실은 위 '항소인의 소송수행능력'은 반대의견 뒤에 설시된 보충의견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통상은 다수의견이 나오고, 그 다음에 "위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이 나오고, 그 다음에 보충의견이 나오는데(보충의견에 대한 반박을 반대의견 개진 대법관이 다시 하는 것을 나는 위 결정문 이전까지는 본 적이 없다), 위 전원합의체 결정의 반대의견은 그 뒤에 설시되는 보충의견에 대한 반박까지 다 포함하여 반대의견을 개진한 것이다(따라서 뒤에 나오는 보충의견까지 다 읽어보지 않으면 다수의견에서는 언급된 적조차 없는 '항소인의 소송수행능력'을 왜 갑자기 반대의견에서 뜬금없이 언급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변호사는 물론이고, 법학을 공부하는 법학도와 법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께 위 결정문의 1독을 권하고 싶다.

서론이 길었는데, 결론은 법률 서면에도 물음표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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