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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May 17. 2019

음악일지


    미라보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다리 퐁 미라보 Pont Mirabeau 위에선 늘 교수님이 들려준 일화가 떠오른다. 유학생 시절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를 병행하던 때, 하도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서 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다리 위를 걸어가며 스캣을 연습했다던 이야기. 



    아무도 듣지 않는 그 긴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마음껏 노래했다는, 연습에 대한 간절했던 그 마음이 사뭇 깊이 공감되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듯 하다. 한없이 불안하고 즐거웠던 학생 시절, 그저 노래하는 것이 행복했던 시간. 다리 위를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도 어쩌면 내가 가는 길을 이어주는 이 다리 밖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자유를 느끼는 것은 아닐까. 




    레슨 일지를 공유해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이것 또한 오랫동안 기록하고 정리해놓은 부분이라 어렵지 않을 듯하지만 다만 늘상 1:1로 학생의 상태와 레벨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레슨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에게 강연하는 식은 좀 부담스러울뿐더러 불필요하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에게 장비가 갖추 어진 녹음실에서 다듬어진 노래를 들려주며 보세요. 이렇게 따라 하는 거예요 라며 피드백 없이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괴리감이 있다고 할까. 실제 나는 유튜브 같은 곳 올라와 있는 보컬 동영상-이렇게 따라 하면 나도 가수처럼 부를 수 있다- 식의 영상은 보지 않는 편이다. 



    온몸을 울리며 소리를 내는 여러 과정을 배우는 보컬레슨은 내 몸을 이해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소리가 나고 어떻게 다르게 나는지, 나는 어떻게 호흡을 하고 있는지 등을 선생님과 같이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 흉부를 만지기도 하며 눈으로 보고 직접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 이러한 이해를 건너뛰고 그냥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편법' 만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다. 





    연습이란 자신과 싸움이다. 그저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내가 모르는새 어느 날 갑자기, 계단을 오르듯이 탁하고 단계별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꾸준하 게 늘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습실에 박혀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기본적인 테크닉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꼭 피아노 앞에 앉아야만 곡의 영감이 떠오르는 게 아니듯이, 콘서트도 가보고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음악에 대해 열띤 토론도 해보고 말하는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도 보고 늘 끊임없이 음악에 대해 생각하고 빠져있을 때 비로소 단계별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갖춰지는 것이다. 




    귀와 코, 목은 다 연결이 되어있기에 어떠한 소리를 내든 나의 성대가 같이 듣는다. 간혹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들이 내는 재미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내는 억지로 목을 쥐어짜는 괴로운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나도 같이 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좋은 발성의 노래를 계속 들어주고, 그들의 발음과 호흡을 같이 느끼는 것도 연습에 포함된다. 일종의 세뇌 훈련인 셈이다. 




    파리에서의 삶을 시작한 이래 연습에 대한 갈망을 놓아본 적이 없다. 놓인 상황 가운데 최선을 다해 호흡하고 연습을 지속하지만 늘 몸과 정신이 내 욕심만큼 따라와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깊은 아쉬움도 느끼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일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희망이 있는 사람이라는 조셉 에디슨의 명언처럼 그동안의 경험한 크고 작은 다양한 무대들이 내 삶에 존재하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리라. 




    충분히 상업적인 무대, 자선공연, 즉흥적인 버스킹 등 수 많은 다양한 무대가 나의 경험 상자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비록 수를 셀 수는 없지만, 그 경험의 깊이는 마음에 새겨져 있는 셈이다. 무대는 한 사람만이 세울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여태 내가 서왔던 모든 무대를 만들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고 또 그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여태까지 쌓아온 ‘나’의 모습에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대, 그런 무대 위에서 사랑을 전하는 나를 오늘도 희망하고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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