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의 '분투기'를 눈여겨 보았다. MZ세대가 작심하고 쓴 돈과 인생 이야기라는데, '분투'가 이토록 찰떡처럼 어울리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궁금해서. 현재 젠더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발행하고 있는 이혜미 기자는 종종 SNS(페북, 트위터)에서 보이던 작가였다. 어디선가 읽은, 확신의 ENTJ라는 그녀의 MBTI 가 기억난다. 기자로 활동하며 '올해의 여기자상'과 '최은희 여기자상'을 받기도 했다는 이력 또한 기억에 남아있다. 여기저기서 추천하는 글을 읽은 후 마침 들린 서점에서 이 책을 집기까지는 이러한 내적친밀감이 한 몫 했으리라.
그런데 책 제목이 왜 '분투기' 인지는, 책을 읽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러 세대중 'MZ'라는 타이틀로 분류되어 있는 나는, 늘 내가 놓여져 있는 사회적, 경제적 흐름 속 나의 정체성을 대변할 언어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현 경제 지면을 읽는 시간을 쏟기에 열정적이고, 여기저기 수집한 정보들로 투자를 일삼으며, 한달 벌어 한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분투기'라는 말이 반가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을 펼치자 마자 쓰여져 있는 머리말부터 이마를 탁 치며 읽었다. '미증유의 시대, 미증유의 세대'. 목차 한번 잘 뽑았다.
MZ세대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모든 담론과 정치,경제 권력에서 비켜나 있으면서, 때로는 오랫동안 취업을 못 하는 집안의 걱정거리로, 차곡차곡 저축할 생각은 안 하고 '영끌 투자'로 아파트 쇼핑에 나서는 한탕주의로, 가상화폐와 주식에 올인하느라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느낄 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로 쉽게 대상화됐다... '가진 자들의 시선'에서다.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그녀는 책에 '돈'과 '인생' 이야기를 일반화하지 않은 담백한 시선으로 풀어놓았다. 자본주의 키즈라고 칭하는 세대들의 고민거리, 생활 방식, 생존 방식, 소비, 환경, 부캐열풍에 대한 고찰, 신념, 페미니즘 등을 군더더기 없는 4부 목차로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 라고 치부되는 배경과 늘 주류권 밖으로 밀려나있는 현실에 대한 부분이 인상 깊다.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많은 컨텐츠들 속에서 지워지는 나의 정체성과 창의성은 부캐에 대한 열망도, 기성세대에게 치이면서 동시에 강요받는 미덕에 대한 단상도 모두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 뿐만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자기계발 서사는 얼마나 전형적이었나, 아니었나를 따져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라는 막연한 결론이 내려졌으니까. 경제적으로도, 사회 지위적으로도, 계급적으로도 통로가 막혀있는 현실에 내가 할 수 있는 발걸음은 오리 물장구 수준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책에서 회자되는 '미라클 모닝', 또는 '모닝 루틴' 이 그를 잘 대표하는 예시가 아닐까. 그녀는 새벽 5시 기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기성세대가 나 잘때 친구는 공부하고 있다, 라는 식의 비교를 앞세운 담금질과는 다른,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단단하게 꾸려나가겠다는 다짐, 지금 일상을 더욱 건강하게, 충만하게, 단정하게 만들겠다는 전사적 의지 쪽에 가깝다. 나 또한 동질감과 동기부여를 동시에 받아 최소 아침에 명상으로 내면을 다지는 일을 습관화 하고 있으며, 이의 중요성을 주변에 전파해온지 오래다.
여러 방향으로 생활적, 성찰적 자극을 유발하는그녀의 다양한 배경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왜 분투기 인지 서서히 알게 된다. 불안한 현실을 야기하지만, 마냥 불안하지만은 않다. 이러한 그녀의 '경제'에 관한 신념과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 등 배우고 싶은 사유들은 글 곳곳에 드러나 있다. 위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열린 마음과 배우려는 태도를 내면화 하고,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성찰지점까지 구석구석을 다룬다. 요새 투자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데, 기본 지식과 경험이 담겨있어 주변에게 추천하기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가볍게 30대인 동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 으로 건넬 수 있어 든든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아주 멋진 동지가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올해가 될지, 내년일지, 아니면 향후 몇 년은 답보 상태일지 모르는 막막한 날들을 하루 하루 지워나가는 기분.
나라는 작은 존재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큰 구조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분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