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셀 수 없이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왜, 그 누구도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중요한 노동에 대해서 가르쳐준 적이 없을까. 7월, 다시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 4단계로 격상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며 빨래, 청소, 설거지, 정리, 즉 무한 반복적인 일상의 뫼비우스 고리들에 빙빙 돌려지고 있는 현재. 그 어느 것보다 가깝게 마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살림'이였다.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꼽아보면 리스트의 쟁점들은 꽤나 타이트함을 알 수 있었다. (현재 공연이 전면으로 제한되어 클럽연주는 쉬고있고, 두 번째 책을 집필하고 있다) 분명한 장점으로는 출퇴근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이고, 단점은 그 나머지 모든 점들이 되겠다. 작업공간과 쉼터가 분리되지 않는 상태는 다른말로 하면 모든 것이 작업을 방해하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한데, 그 중 가장 작업을 방해하는 요소는 '정리정돈 되어 있지 않은 집안 환경'이다. 쾌적한 환경은 쾌적함을 위해 끊임없이 치우고 정리하는 손을 필요로 한다. 눈을 책상 밖으로 조금만 돌려도 치우고 닦을 것들이 넘쳐나는 집은, 일하기 싫은 온갖 핑계를 충족하기에 딱이다.
'살림은 가장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자기 돌봄 행위다'. <듣똑라>의 상지 기자의 말에, 나는 얼마나 자기 돌봄 행위를 잘하고 있었나 반성하게 된다. 먼지는 누군가는 닦기 전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오히려 쌓이기만 할 뿐) 내가 누리는 전기, 수도, 난방 같은 것들은 전부 공짜가 아니었다는 아주 기본적이지만, 때문에 쉽게 간과할 수 있었던 사실들을 떠올려보자. 이런 것들을 바보 같은 진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1인 가장인 나는 살림력에 자신이 없는 편이다. 경제적 자립을 하며 굉장히 기본적인 요소로 따져봐야 했던 이러한 살림력은 염두에도 없었다는 사실.
오랫동안 파리에서 혼자 살땐 학생 신분으로 매 년 이사를 다니느라 짐을 풀고 싸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했기에, 내가 가진 물건들 그리고 내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대한 자각심이 비교적 큰 편이었다. 프랑스에 입성하고선 파리 외곽, 비교적 위험한 사건사고들이 많이 일어나는 동네 18구에서 첫 발을 내뎓고, 점차 파리 15, 14구 같은 안전한 중심가로 집을 구했다. 처음에 집을 구하러 다닐 땐 엔 나의 거주지가 위치한 동네, 마트나 인근 편리시설 같은 안전 문제와 연결되는 기본적인 사항 말고도 빨래를 널었을 때 얼마나 잘 마르는지, 햇볕은 얼마나 들어오는지, 이웃과의 소음문제는 없는지, 배수시설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등 같은 살림을 행하는데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들은 잘 파악하지 못했다. 일단 이런 조건들을 따져가며 집을 구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태가 아니기도 했지만, 처음 혼자 자립을 하면서-그것도 외국에서- '살림'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더 크고 묵직한 과제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지금처럼 '살림력'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 당시 삶의 질은 아주 상승했으리라 짐작한다.
당시 파리에서 쓰던 침대는 까나페(접이식 침대)였으며, 이불은 이케아에서 구매한 가장 저렴한 라인의 얇은 재질이었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라브리(빨래방)가 있었지만 매일 입는 의류 외에 침구 세탁은 자주 하지 못했다. 한국과는 달리 비교적 습도가 낮고 선선한 날씨가 잦은 파리였기에 망정이지 여름과 겨울 습도가 뚜렷한 기후였다면 집에 있는 모든 종류의 패브릭을 매주 세탁했어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귀찮은 일이다) 침구 세탁은 최소 2주에 한 번 행하지 않으면 이불과 배겟잎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설거지는 먹고 그때그때 치워야 하고, 싱크대 배수구는 매번 닦지 않으면, 또는 음식물쓰레기를 잘 치우고 밀봉해놓지 않으면 주방은 순식간에 세균 증식의 아지트가 되고 만다는 사실들은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얻어지는 지식이 아니다. 내가 먹고 입고 쓰는 것들을 유지, 관리를 하는 능력은 대체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 기획의 <솔로 1집>에서 말하는 자립의 정의는 간단하게도 이렇다. 이런 능력을 내가 갈고닦아야, 살면서 매일 행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반복적인 노동 중에 첫 번째인 이러한 살림 능력을 단련해야 일상의 '기초'가 유지된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을 조금 더 일찍 깨우치고 행했다면 파리에서의 그 작은 월세방은 조금 더 살만한 공간이 되었을 텐데.
매일같이 다각적으로 마주하는 일들, 스트레스 또는 다양한 감정들에 지쳐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을 가장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침에 출근하며 전쟁통으로 만들어놓은 어수선한 방이 날 맞이하는 일의 빈도는 꽤나 높은 편이다. 방에 떨어진 머리카락 (왜 치워도 치워도 계속 생기는지), 쓰고 제자리에 가져다 두지 않으면 꼭 두 번 손이 가야 하는 귀찮은 모든 물건들, 1순위로 두고 해결하지 않으면 어느새 손을 대기도 싫어지는 화장실 물때, 청소. 살다가 문득 드는 질문. "나 지금 괜찮은가?"를 묻기 전에 방을 둘러보라고 말하고 싶다. 내 방을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쾌적하게 유지하는 것부터가 나를 돌보는 행위의 시작이니까.
살림은 기획, 창의력, 재고 관리, 추진력, 스킬, 마무리, 청소 등 종합예술이다
- 이현 기자
각종 집안일을 하다 보면 아, 이래서 살림은 종합 예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구나를 느끼게 된다. 온갖 청소, 설거지, 정리는 하루아침 뚝딱 완성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 그 무엇보다 섬세하고 꼼꼼하게 신경을 써서 처리해야지만, '공간 관리'라는 반열에 살짝이나마 올라탈 수 있다. 게다가 모든 집안일들이 종합적으로 완성된 상태는 드물다. 쓰레기는 내놓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고, 분리수거는 규칙이 있으며 침구나 의류 세탁은 건조와 정리까지 최소 2시간은 잡아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종합예술 이라고도 불리는 살림 기초를 하나둘씩, 경험을 거쳐 쌓아 가며 나는 과연 1인분의 몫으로 좀 살 수 있게 되었구나 라고 느꼈냐고 질문한다면, 글쎄... 아직 멀었다. 가족, 룸메이트 또는 나의 파트너와 종종 같이 공간을 공유하며 그들의 빛나는 살림력을 눈치껏 배우며 산다.
이현, 상지 기자의 말처럼 살림을 하다 보면 나의 취향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기도 하는데, 오로지 나 혼자 공간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수많은 선택을 마주하며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은 살림을 행하며 얻는 기쁨 중 하나이다. 나의 편의에 맞춰 가구를 산정하거나 식량을 채우는 기본적인 단계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면, 조금씩 조금씩 나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되고, 공간을 관리하는 능력이 단련됨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일상과 가깝게 맞닿아 있는 일, 살림. 그런 면에서 살림력을 키울수록 어른이 되는 게 아닌가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했다.
이렇게 현명한 언니들과 함께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수도권에 자립한 청년으로서 청소, 정리, 공간 관리, 유지에 필요한 모든 살림력을 총동원하여 매일 성장하는 중이다. <솔로 1집> 코너 이름으로 어른 ing을 고려했던 부분에서 어 정말 괜찮다... 를 속삭이곤 했던, 처음부터 응원했던 팬으로서 다 함께 '전인적인 인간'이 되자는 슬로건을 오늘도 붙잡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내 컴퓨터 옆에 놓여진 두 잔의 커피 찌꺼기가 말라붙은 컵들이 신경쓰였다. 이것만 쓰고 얼른 치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