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일라 Jul 25. 2021

여름을 지나며 쓰는 글



    성악가 조수미 님의 아시안 리더십 스피치 영상에서 그녀는 슬픔과 공감을 나누며 이야기한다. '많은 음악인들이 갑자기 설자리를 잃었고 앞으로 먹고 살 일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젊은이는 10년 넘게 연주하던 바이올린을 팽개치고 배달을 하기 시작했고, 합창단에서 노래하던 몇몇 가수들은 코로나에 감염되어 결국엔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분리된 세상을 더 극단적으로 드러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고 느낀다. 생각해보면 대략 1,2년 전까지만 해도 비좁고 옅은 나의 바다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편협한 생각이었으나, 그것이 나의 생각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기에 방어전선으로 내세우곤 했다. 매일같이 새로운 산과 장애물들을 마주하고 넘어지면서 용기와 지혜가 샘솟았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실상 꺾이고 다쳐 엉망진창인 마음만이 남은 나의 20대 마지막은 초라했다. 내게 남은 것은 약과 치료 그리고 시간밖에 없었으니까. 친구와 전화를 하며 극복했던 병명들을 읊는데 그가 말했다. 맞다 너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지.



    거친 나의 바다에서 새로운 파도가 치고 물결이 흘러들어오면 굳건했던 나의 마음은 자꾸만 요동을 쳤다.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과 믿음은 늘 부서지고 산산조각이 났다. 나비가 애벌레 허물을 탈피하고 촉촉한 날개를 후드득 털어내면 뽀송해지듯이 나도 늘 새로워지고 산뜻해지면 좋으련만. 도전들을 하나를 넘고 두 개를 넘고 나면 멘탈은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안타까웠다. 일말의 발전은 분명 있으리라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도 이런 짠한 나 자신이라니.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으로 단절된 일상이었지만, 이런 나를 알아봐 주는 듯 적극적이고 유쾌한 인연들이 곁에 생기기도 했다. 사랑과 응원으로 채워진 일상은 새롭고 두려웠으나 말 그대로 빛이 났다. 그 빛은 분명 영원할 수 없는 한시적 빛임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품고 있는 것만으로 나까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아서 참 좋았달까. 내가 '관계'에 속해있는 상태를 좋아하는 이유다. 정말 아닌 것 같은 상식적인 경우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해서라도 지키려는 노력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고.






 브런치 업데이트를 쉬는 동안, 몇 번을 뒤엎고 또 쓰던 기획 글 사이에서도 채워지지 않던 글 욕을 별다른 고민 없이 쓰는 블로그 글로 채워왔다. 버티는 데에는 다른 거대한 뜻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을 얻고자 노력하고 실패를 반복하며 그 안에서 나 자신을 깨우쳤을 때에도, 약을 끊고 다시 먹고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때에도 이 또한 흘러갈 것이라 생각하고 담담한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하는것. 그게 버티는 거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짤막하지만 형체가 분명한 단상들을 모두 붙잡아 적어둘 수만 있다면, 나의 일상은 조금 더 견고하고 단단해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분명 있다. 시간의 흐름 속, 아쉬운 것들은 너무나 많다. 기획 글을 쓰다 보면 분명 일상 기록과는 다른 결의 글 욕이 채워지긴 하지만, 글 노동으로 마무리하는 하루의 끝에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는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한 문장. 글쓰기는 돌파구였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돌파구. 취미 따위로 영위할 수 없는 생존 수단이 되어버린 나의 돌파구는 그만큼 절박했고 주변의 경험과 선택으로 인해 단계별 성장을 겸하면서도 아주 느린 속도로 풀려왔다. 짧게 엉켜있는 실타래처럼 부족한 필력과 공부는 성찰을 자아낼 뿐, 그 이상을 바라지 못한다. 나의 돌파구는 자고로 이처럼 초라하다.            

 


내가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 머리 위에 지붕이 있다. 오늘 하루 굶지 않았다. 타인의 행복을 빌어 줄 수 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나를 돌봐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더 나은 내가 되려 노력한다.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다. 꿈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지금 살아 있다. 이처럼 작은 것들에 감사하자. <어젯밤, 파리에서>




  자생을 바라 왔지만 결국 자생은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많은 걸 바란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자주 세워두었던 기준이 바뀌곤 한다. 몇 년 후의 안위를 걱정하는 공항에서의 무거운 발걸음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오늘 저녁을 걱정하고 있다. 길고 짧은 관계들 속 나 자신을 지켜내기 쉽지 않음을 불평해왔지만 이마저도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음을 회자할 정도의 여유는 생겼다. 며칠 전 학원 내 교육자들은 2주마다 코로나 선별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띵 했는데, 이마저도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어서. 나는 잘하고 있나 떠올리며 찾게 되는 지난 기록들.


            

 이처럼 나는 어떤 사람이냐는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이냐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왔다. 이 심층적 질문에 그저 단순한 한 단어로만 답할 수 있다면, 글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주변에서 나를 '나타내는' 말은 많다. 하지만 결국 그중도 내가 선택적으로 취하고 의미 두는 일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다원예술가, 작가, 선생님, 기획자와 노동자 사이에 있는 그 무언가 중 하나. 자, 자, 골라골라.



매거진의 이전글 고생했다고 말해주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