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 아침, 떡국을 먹었다. 지단이 색색 곱게 올려지고 진한 사골의 향이 일품인 떡국이었다. 이런 상차림을 받을 수 있다면, 이만한 사랑과 응원을 받을 수 있다면 나이쯤이야 두 살 먹어도 좋다. 더욱 현명하며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는 나는 이 떡국에 담긴 고마운 마음만큼만, 날 배불리 먹여주고픈 은혜로운 손길만큼만 성장한다면 더 소망할 것이 없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그릇 깨끗이 비웠다. 동시에 1월 공연도 2.5단계 연장으로 미뤄진 상황에 개인 레슨 시작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지금, 나와 더불어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을 동료들이 떠올랐다. 모두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밥을 굶지는 않는지 조심스레 묻고 싶어 졌다. 같이 술 한잔 하며 (물론 5인 이하) 얘기 나눌 날이 과연 올까. 가슴에 품고 있는 질문에 답이나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분명 얼굴을 보고 나눌 수 있는 위로가 다들 그리울 텐데 말이다.
평소 자주 접하는 작가인 <은유>님의 새 팟캐스트,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그녀는 말했다. 글을 쓰게 하는 것은 '나' 이기도 하고, '남' 이기도 하며, '마감' 이기도 하다고.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글쓰기의 동기부여는 달라진다. 그동안 나는 삶은 글쓰기와도 같다고 생각해왔다. 적어도 내게 2020년 한 해는 쓰는 근력으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나, 남, 그리고 마감 이 세 가지가 나약한 나를 버티게 했으니까. 그런 나를 나는 토닥거리며 고생했다고 충분히 위로했는가, (인간의 인정 욕은 생존과 관련한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 다룰 수 없는 순전히 심리적 욕망에 해당되는데) 이를 충분히 채운 한 해였는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노'였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 바빴다. 나만큼 힘들지 않은 20대 청년은 없다고, 나는 아직 한참이나 부족하다고 되뇌면서 불안에 떨었다. 결국 작년의 명제처럼 늘 글을 쓰고, 피아노 앞에 앉아 무너지며 곡을 쓰고, 관계 안에서 새로 피어나고 또 부서졌던 나 자신을 사랑하는 욕구를 정의하는 것과 아주 멀지 않은 올해의 명제는 바로 '사랑'에 있었는데, 또 간과한 것이다.
이 명제를 올해는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년 1월 1일에 또 이런 성찰류의 글을 덜 부끄럽게 쓰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턴 유의미한 단순노동 (그것도 노동 값을 받는)을 행할 기회를 찾아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 나를 지킬 생활을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의 노동력을 책력을 사랑력을, 그리고 정신력을 다지고 또 다져서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물론, 신년 계획은 늘(예외 없이) 거창했기에 큰 기대는 없지만 하나하나 해결하는 기쁨의 출발선을 끊을 수 있으리라 다짐한다.
그래서 떠올리는 감사함에 대해서 - 감사함의 단상을 일일이 기록하고 묵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길었던 한 해의 끝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사한 것들을 적어본다. 오늘 하루를 영위하는데 가장 필요한 - 내 머리 위 지붕이 있었다는 것, 오늘도 굶지 않았다는 것,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를 찾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같은 감사한 일들. 한 해 동안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글로 풀어쓰다 보면 나는 웃을 수 있지 않을까.
31일에서 1일로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만은 기록에 의미를 둔다.
1. 내적, 육체적 건강을 위한 운동 계속할 것
2. 발성 연습하듯 글쓰기
3. 여행 다닐 것
4. 사랑할 것 그리고 용서할 것.
작년 1월 1일에 쓴 글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3번은 불가능했고, 나머지는 그럭저럭 80점을 준다. 후하게 친 점수다. 사실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지 않았는가에 중심을 두고 앞을 바라보는 것이 옳기에 점수를 매기는 것엔 큰 의미가 없다. 나의 올해의 소망이라고 하면- 타자에게 말을 할 때 드러나는, 내게 깃들어 있는 허세를 제발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욱 잘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간결한 면들을 더욱 갈고닦아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보다는 나은, 이타적인 나의 모습을 더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씨름하는 질문들에 어느 정도는 답을 할 수 있게 되기를, 타협할 수 없었던 일들을 관용적인 자세로 아우르고 품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기를. 내 약함을 강함으로 다질 수 있기를. 담담하되 따듯한 온기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신년맞이 소원이나 다짐들이 가득 찬 SNS 창을 보면서 나 또한 적어야지, 하다가 결국 1일을 넘겼다. 늦었지만 올 한 해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다. 건강하게 그 자리에 버텨줘서 고맙다는, 우리 이제는 행복하자는 마음. 이 마음을 문자나 전화로도 전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글로 풀어내 소심하게 포스팅 주소를 보냄으로 대신하려 한다. 한 편으론, 이런 마음을 전 할 수 있는 귀찮은 사람이 될 수 있어 기쁜 새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