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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일라 Nov 23. 2020

늦은 가을밤의 단상


    지하철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중에 꼭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뉴스가 저녁시간을 내내 채운 날이었다. 열차가 와서 먼저 자리를 내어주고 한 자리에 섰다. 건너 좌석엔 손을 꼭 맞잡고 있는 다른 두 사람이 보였다. 



    조금씩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맞잡은 손과 품은 참 따듯해 보였다. 사실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서로 각각의 중심에 자신이 있고, 무해한 신념과 자아가 단단하게 어우러지는 사람. 단단한 믿음으로 어디서든 서로를 존중하고 그리워하며, 만나면 떨어져 있던 시간보다 더 좋은 양질의 사랑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늘 불안하고 정처 없었던 관계 속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영원을 빌었었나 반추해보면 사실 실체는 보잘것없는 것들이었기에 가져왔던 바람이었다. 



    내가 마음을 두어 붙일만한 곳을 모색해왔던 것처럼,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 내게 닿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쳐 왔을지 생각한다. 그동안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면 늘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공들여 쌓아 온 나의 경험과 축적된 인식이 대화 속에서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잃는 것도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잠자고 있는 나의 의지를 흔들어 깨워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 내 반경으로 들어오려 노력한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움직이게 되는 것. 내 마음이, 마음에게로 뻗는 것. 늘 이런 옅은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왔다.



 인간으로서의 '나'를 소개한다는 것은 단순한 듯하지만 사실상 참으로 복잡한 일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씨름하고 있는 물음들, 타자에게 건네는 질문들을 통해서 나는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세계의 내음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물음들, 자신이나 이 세계에 던지는 질문들이 그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 강남순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이라 생각했던 가치는 늘 내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여기면 다행이게, 내 안의 약함으로 자책하기 시작하면 나의 하루는 물 먹은 솜뭉치처럼 조금씩 가라앉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말이다. 그럴때면 내 안에 있을 나침반을 더듬거리며 찾는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있을 마음의 나침반. 이는 여태까지 읽고 새긴 현자들의 글과 음악이었고, 부모님의 사랑이었으며 친구들과의 추억, 연인들과의 연서였다. 나는 시시때때로 자주 고장 나고 멈춰 섰다. 하지만 이렇게 쌓인 나침반을 손에 쥐면 늘 왠지 모르게 든든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난 음악과 글이 주는 위로에 매달려 사는 여자다. 그렇게 얻은 기운으로 친구에게, 연인에게 또는 가족에게 따듯한 위로를 건네고 사는데 전부를 바친다. 때론 나침반 고장 난 배 같이 방향을 잃고 늘 몰두할 대상을 탐구하기도 하며, 한참을 헤매다 결국은 마음이란 걸, 그래서 때로는 너무 가까이 머물러 있는 또는 널찍히 떨어져 있는 마음을 확인하는 일은 꽤나 쓸쓸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동시에 두 발 붙일 안전한 쉼터를 물색하는 사람을 향한 여정은 사실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목적지가 있는 대중교통을 타지만 늘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스쳐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의 견고한 '나'를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이 세상 어디엔가 분명 존재할 마음 붙일 제공터를 꿈꾸게 되기 때문이다. 



    늘 변하고 움직이는 마음을 정처 없이 따라가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을 붙잡아 이 곳에서 잠시 쉬자는 말을 건네고 있다. 지금, 이 곳. 늘 혼란스러운 정체성의 물음과 지속 가능한 예술인의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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