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호흡연습이 제일 하기 힘들어요. 생각도 잘 안나구요.
계속해서 울상짓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설명한다. 호흡연습하는 시간은, 내 몸이 어떻게 숨을 쉬는지 집중해서 느껴보는 시간이야. 꼭 호흡이 길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일정하게 쉬고 내쉬는 과정에서 제한되고 풀리는 근육의 움직임과 힘을 조절하는 느낌, 그게 중요해. 우리가 노래를 하기 전에, 소리를 제대로 내기 전에 몸을 이완시키고 좀더 섬세하게 몸을 다루기 위한 연습이야. 꼭 매일 해야 해. 당연히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하게만 말하진 않는다. 떡하니 숙제 안해오는 학생에겐 매섭게 혼을 내키기도 한다.
내가 지금의 누군가의 '선생님' 이 될 수 있는 동안, 그동안 참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이끔을 많이 받았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여러 도움도 받고, 잊을 수 없는 좋은 기억이 현재로 나를 이끈다. 나도 잘 돌려주어야 할텐데 하는 빚진 마음으로 피아노실에 매일 들어가고, 나오고, 또 레슨일지를 작성한다. 이처럼 밥 먹고 사는 레슨노동자로 사는 동안 나는 질문하게 된다. 내가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언제일까? 바로 운동하는 순간, 그리고 글을 쓰는 순간.
3년전에 만났던 한 시인이 떠오른다. 오래전에 등단한 그녀는 술을 마시며 시를 쓰는 순간이 유일하게 방해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술을 마셨고, 테이블 위에서 그녀의 책을 낭독했었다. 그날 밤 모두와 함께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말이 뭐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또렷이 기억난다. 연필로 시를 쓰고 가사를 적고 노래하는 동료들의 들썩거리는 어깨가. 문득 그들을 떠올리며-일 년 넘게 지난 지금 여전히 똑같이 밥 먹고 사는 노동 문제에 시달리지만- 다시 글을 읽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노래하는일 = 삶의 숨을 한 템포, 한 템포 잘 쉬는 일.
언제나 그래왔듯이.
며칠 전, 연주자들을 만나서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온통 떠들었더니, 몸안의 음악 에너지가 한계치에 다다른 느낌이다. 무대에서 연주를 함으로서 음악을 표현하는 것과, 음악에 관한 대화를 ‘말’ 로서 풀어내는 일은 분명하게도 결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방향의 촉이 소진된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질량보존에 관한 법정강의를 한 번인가 오래전에 들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문득 떠올랐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의 질량을 재고 나누는 시간에서 과연 무엇이 흐르고 있고 무엇이 남을까. 어떤 면에선 에너지라는 것은 참 유기적이다.
그래도 내 안에 좋은 생각들과 에너지를 계속해서 집어넣다 보면 흐려지고, 희석될 것이라 믿는다. 현자들의 말과 글, 아름다운 것들, 위로가 되고 힘이나는 것들을 붙잡고 희망을 찾는다. 사실 오늘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내 안에 쌓인 사랑과 긍정의 힘이리라. 긍정을 이야기하자면 늘 해오던 생각인데, 직업 앞에 ‘전업’ 이 들어가면 개인적으로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비록 임금률은 직업별로 상이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자면 ‘전업’ 작가, ‘전업’ 가수 등, 예술가 계통이 특히 그렇다. 아마 ‘전업’으로만 먹고 살기는 (일반적으로) 유독 힘이 든 분야라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업’작가 이자, ‘전업’연주자 둘 중 하나로만 살 수 있다고 하면, 아마도 도망갈테다.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지참하는 것과는 별개로) 오로지 글만 쓰며, 또는 노래만 하며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거꾸로 보면 다재다능하다는 말로 오역될 수 있겠으나 실제는 전혀 반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교차되는 동기부여와 감명받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 다분하기 때문인데, 만약 내가 ‘글’만 써왔거나 또는 ‘음악’만 해왔다면 멀티에 이토록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창작과 연습(레슨)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종종 지난 행사 연주의 감흥을 이어받아 그다음 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글로 써내려가거나 예전에 써둔 단편으로 곡을 만들기도 한다. 글을 쓰며 레파토리를 만들고, 다른이의 창작물에서 스토리텔링 영감을 얻기도 한다. 이토록 내게선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일은 사실 문화예술이란 장르의 이름으로 한 데 묶인다. 단지 내적의 예술을 말과 글, 소리와 언어 어느 쪽으로 표현하느냐의 차이가 있다는 것.
주중을 넘어 주말까지 레슨을 하다 보면 종종 시간의 흐름을 놓친다. 토요일이 평일처럼 지나가기도 하고 비교적 레슨이 적어 느리게 가는 하루는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레슨은 학생과 1:1로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주로 1시간 또는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 레슨 속 나아가는 진도와 내용은 단계별로 제한적일 수 있으나 학생의 배움엔 한계를 두지 않아야 한다. 또한, 수업 동안 학생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와 환경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학생이 내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어야 비로소 수업은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발전과 호흡을 맞춰 이끌어가는 레슨 수업은 월, 년 단위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가끔 레슨실 밖의 일이나 예상하지 못한 일로 이처럼 휴강을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수업 진도는 물론 중요하지만 내용이 한 주 밀리는 것보단 몸, 마음 건강 그리고 배우려는 의지와 연습이 더욱 중요하기에 학생의 재정비를 독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레슨노동자의 안녕은 어떻게 지키는가? 수 많은 예술인들에게 마음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단기-장기적인 글쓰기를 독려해왔다. '글쓰기’는 세상과 타인에 휘둘리는 나를 붙잡아 준다고 믿는 나는, 매일 조금이라도 읽고 쓰는 일을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한다. 글쓰기로 안녕을 지키는 시작점을 걸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를 돌볼수 있다면, 창작과 연습의 희미한 경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