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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 엘베에서 비트코인에 대해 물어봤다.

엘베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던 그 날.

by 찬란


“부자워너비 424님! 내일 시험 본다고 하셨죠?? 정말 응원합니다. 건승하세요!”

“2년을 꾸준히 하셨는데 합격 보장이죠! 잘 보세요!”

“고맙습니다 미라클 모닝회 여러분! 잘 보고 올게요!”

핸드폰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폈다. 겨울 새벽이라 깜깜했다. 자고 있는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히 걸어 나와 책상에 앉았다. 내일 시험을 보기 전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했다. 책을 펼치고 맥북을 열었다. 최근에는 여러 프로그램과 인터넷 강의가 있어서 공부하는 과정이 좀 더 수월해졌다. 통계학과 선배들 말에 의하면 전에는 그저 책만 들입다 파야 해서 힘들었다던데.

“다음 상황에서 NPV를 계산하시오. 기업 A는 최근…”

두어 시간 사각사각 거리며 공부를 하고 있자니 창문 밖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아내의 핸드폰 알람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부스럭 일어난 아내가 컴퓨터 방 문을 열었다.

“여보 내일이 시험이지? 오늘은 연차 냈어?”

“응, 오늘 내일 연차야. 오늘 공부 하고, 내일 시험 보러 가야지.”

“화이팅 하구, 나 그럼 출근할게.”

“응 당신도 잘 다녀와!”

올케에게 천만원 빌려준 이야기를 한 뒤로 수척했던 아내는 다시 회복되어가는 듯 했다. 아내는 아직 몰랐다. 나도 회사 동료 용과 차장에게 천만원을 빌려주었다는 것을. 몸이 약한 아내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비밀로 해야 했다.

설마 같은 회사 다니는데, 내 돈을 떼먹기야 하겠어.

일단은 시험에 집중하자. 시험 끝나면 얘기해 봐야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도망가고 싶은 상황이 생기면 공부에 몰두하곤 했다.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해야 했다. 시험에 합격해서 ‘보험계리사’ 자격증이 생기면, 나는 금융업계로도 이직 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라임씨 연차였다면서요, 어디 여행 다녀왔어요?”

“아, 네. 와이프 몸이 안 좋아서, 병원 다녀왔어요.”

“아, 그랬구나…”

회사에서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원래 나는 빅마우스였다. 신나게 떠들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어울리곤 했다. 그러나 비트코인에 크게 데인 이후로 교훈을 얻었다. 회사에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좋다는 것을.

“라임씨, 비트코인으로 많이 벌었어?”

“라임씨, 요즘 비트코인 왜 이렇게 떨어지는 거야?”

비트코인이 한참 잘 나갈 때 자랑 두어번 했다. 회사 안에서 소문이 번져나가는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무님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에게 말을 걸 정도였다.


“자네가 비트코인으로 돈 벌었다며?”


네, 300백만원 벌었습니다 -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100만원으로 한 개 샀는데 1,400만원까지 갔다가 300만원으로 추락했습니다. 그래서 다 팔아버렸어요. - 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창피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비트코인이 오를 때야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나 세상 만사 모든 것에는 하락장이 있었다. 비트코인이 하락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나 때문에 하락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꾸 나에게 하락 이유를 물었다. 손해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더더욱 예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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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전략기획부문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사고를 당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 용기, 희망을 믿습니다. chanranfromyo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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