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엄마로 살아가기

by 레이마망

잠시 일을 쉬기로 했다.

우리 아이가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나의 하루를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은 준이의 엄마로 바뀌었다.

그렇게 2020년을 맞이했고 지금은 코로나가 여름 오기 전 떠나길 기다리고 있다.


맞벌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와 남편은 정신없는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매일 밤 준이가 빨리 잠들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겨우 채우고 버텼다.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준이를 데리고 와서 아이가 잠들기까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3시간뿐임에도 우린 매 분마다 시계를 확인했고 힘들었했다.


아이는 엄마 아빠에 대한 갈증으로 보챔과 투정이 갈수록 심해졌고 나와 남편도 지치기 시작했었다.

흔히들 어린이집을 다니면 콧물은 원래 달고 사는 거라지만 1년 동안 콧물약을 먹지 않은 날은 열 손가락 안에 드니 이러다 간이 안 좋아지면 어쩌나 싶고 코가 막혀 숨을 잘 못 쉬는 아이의 얼굴을 볼 때면 맞벌이하는 내가 죄인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연차는 어린이집 여름방학이 지나면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면역력에 좋다는 프로폴리스, 삼부커스 젤리부터 아기 비타민, 배도라지즙이며 소문에 좋다는 것들은 다 찾아서 먹였다. 또 다음날이 되면 준이는 콧물을 흘렸고 어린이집 하원 후 무작정 보채는 아이를 안고 소아과로 뛰어갔다. 늦게까지 진료하던 동네 소아과의 진료시간이 6시로 변경되었을 땐 하늘을 향해 괜히 화를 냈다.

밤 12시까지 야간 진료하는 내과를 찾았을 땐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주말이 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평일에 어린이집에서만 지낸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었다.

어린이집에서 견학 갔다 온 타요 키즈카페가 너무 좋았다는 표현에 타요 키즈카페에 또 데려갔고 아이가 책에 나오는 사자를 좋아하면 사자를 보러 동물원을 갔고 물고기에 관심 있어하면 아쿠아리움을 갔다.

동네 공원이라도 꼭 나가서 뛰어놀았다.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시린 마음을 훌쩍였다. 일기예보에 주말에 비가 온다고 하면 금요일 밤에는 나와 남편은 실내에서 놀 수 있는 장소를 검색하기 바빴다. 그렇게 주말 외출은 맞벌이 엄마 아빠에게 의무감이 돼버렸다.


아이가 두 돌이 되었을 때이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또래 친구와의 관계 형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한 고비 넘기고 이젠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 번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블록 놀이를 하고 있다가 친구가 옆에 와서 블록을 만지면 손에 쥐고 있던 블록을 가지고 등을 돌리거나 앵앵 거리며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한다고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기보다는 혼자 놀이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며.


무엇보다 아직 말을 못 한다. 같은 개월 수 아이에 비해서도 늦지만 뒤늦게 말문이 트이는 아이들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걱정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편식만으로도 버거운 아이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와 남편이 더 버거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아이는 말을 하는 것보다 쉬운 행동이나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했다. 아마도 말로 이야기하는 친구들과 놀기 어려워서 혼자 놀았던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내셨다.

아마도 준이가 내성적인 성향인 데다 이른 시기부터 기관 생활을 해서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한 것 같다며.


아이의 보챔과 투정은 '엄마 나 좀 봐요' '아빠 나랑 놀아요'의 대신이란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아이의 하루만큼이나 나의 하루도 지쳤으니깐. 모른 척하면 아무 일 없이 그냥 지나갈 줄 알았다.

모른 척 덮어두었더니 아이에게 탈이 생겼나 보다.

아이의 불안함이 언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일을 잠시 그만두고 준이의 엄마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아이에게도 보통의 하루가 찾아왔다.


매일 아침 8시에 등원하고 7시에 하원했던 아이는 아침 9시 반에 등원하고 4시에 하원했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등원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침밥을 챙겨 줄 수도 있고 옷 입기 싫다고 도망 다니는 아이에게 늦었다고 소리치며 잡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하원하고 난 후에도 해가 쨍쨍하니 놀이터에 마음껏 놀 수 있고 집 앞 마트에 들러서 좋아하는 킨더 조이를 사서 어떤 장난감이 나올지 함께 두근두근했고 뽀로로 음료수를 마시며 느긋하게 집으로 갔다.

퇴근 후 집안일에 치여 아이와 제대로 놀아 주기 어려웠던 아빠는 온전하게 아이에게 집중해서 놀아줬다.

희한하게도 콧물감기는 예전에 비해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빨리 나았다.

어린이집 부모 행사에도 참석하고 아이와 함께 고추장도 만들고 피자 체험활동도 다녀왔다.

또래 친구와 익숙해질 수 있도록 어린이집 친구와 함께 소풍도 가고 동물원도 갔다.

무엇보다 아이의 들쑥날쑥한 감정이 나올 때면 '지금은 늦었으니깐 나중에' 란 말 대신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이리 짜증만 낼까' 하며 한숨을 쉬며 겨우 보내던 그 하루가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고 일주일 내내 짜증 한번 없이 보내기도 했다.

편식 대마왕이었던 아이는 제법 잘 먹었고 처음 본 음식에 관심도 가지며 겁내지 않고 한 숟가락은 먹어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마트에 사 온 대파를 한참을 보며 "냠냠냠" 하더니 한입 푹 베어 먹었다. 당연히 먹자마자 뱉었지만 나와 남편은 엄청나게 놀라기도 기뻐하기도 했다.


또래 친구와의 놀이도 금세 발전을 보였다. 함께 시소도 타고 블록 놀이도 하고 자기 공룡 인형 하나를 주고 같이 놀자고 표현했다. 자기보다 어린 동생에게는 자신의 과자를 선뜻 나눠 주기도 했다. 낯선 친구들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고 놀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 틈으로 들어가 함께 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자신감도 상당히 커져서 소극적이었던 음악시간에도 신나게 참여하고 율동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준이의 말문이 트였다.

기다려주고 들어주었더니 한 개의 단어에서 열개의 단어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준이가 말을 하려고 할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눈높이을 맞춰 얼굴을 보며 기다렸다. 그리고 엉켜서 나오는 단어들로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다독여 주었고 또박또박 말하려는 준이의 목소리를 수수께끼 정답을 맞히는 것처럼 신이 난 얼굴로 들어주었다. 아이는 어느새 말이 잘 나오지 않아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화를 내는 것을 멈추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다르게 말문이 트였다.

아이의 속마음을 말로 들을 수 있으니 울음은 반을 줄었고 우리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이의 변화에 나도 행복했다. 다행히 내가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아 뿌듯했다.


보통의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은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경력이 쌓인 만큼 나이가 많은 프리랜서에게 장기간 공백이란 다음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되는 것이었고 현실적으로는 곧 이사 갈 아파트로 인한 금전적 여유가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 스스로에게 큰 결정이었다.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했고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준이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결정을 해야만 했고 그렇게 했다.

처음에는 집안일도 즐거웠고 시장 장보기도 재밌었고 드라마 몰아보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집안일에 갑자기 짜증이 나기도 했고 딱히 할 일 없는 하루가 화가 났고 사소한 일들만 하는 내가 한심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루 반나절은 입도 뻥긋하지 않은 날도 수 없이 많으며 거울을 보며 단장이라는 걸 한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헐렁하고 편한 트레이닝 차림이 일상이 되었다. 이유 없는 우울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남편이 생각 없이 놔둔 양말 한 짝에 시작된 잔소리를 방패 삼아 내 감정을 폭풍처럼 쏟아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여자니깐 엄마니깐 당연한 것 아니냐며.

결코 보통의 엄마로 일상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지도 쉬운 일도 아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내려 두어야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나의 시간을 멈춰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잠깐이 될지 평생이 될지는 온전히 나의 의사만으로 결정할 수도 없다. 문득 멈춰진 나의 모습을 볼 때면 말할 수 없는 감정이 터져버려서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소중한 우리 아이의 인생을 다져주는 밑거름이 되는 것을 알기에 나의 시간을 멈추고 아이의 세상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이의 보통의 일상을 위해 나의 하루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아이의 일상으로 엄마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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