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길 좋아하고 서너 개 되는 친구들과 직장동료들 모임의 운영을 담당했었다.
사내 행사뿐만 아니라 사외 행사 사회자도 도맡아 했고 디자인 업무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했다.
그러나 어릴 적 나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아이였다.
엄청난 엄마의 껌딱지였고 낯가림도 심했고 유치원은 적응을 하지 못해 몇 달을 다니지 못하고 그만뒀다.
엄마 손에 강제로 등원하면서 엄마에게 유치원 문 앞에 서 있으라고 말하고는 유치원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보고 싶어 다시 나왔을 때 집으로 걸어 가고 있는 엄마를 찾아서 달렸다.
6살이었던 그때 나는 유치원에서 몰래 빠져나와 혼자 집까지 걸어 간 적도 있었다. 엄마가 날 버리고 가는 것만 같아서 매일 울었고 유치원 생활도 재미없었다.
유치원 친구에게 집에서 가져온 인형도 뺏겼고 다른 친구들과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싫다는데 자꾸 유치원을 보내려고 하는 엄마가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가 아닐까 의심도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껌딱지처럼 하루 종일 붙어 있으려고만 하는 막내딸 때문에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떠올려 보면 소심한 탓에 친구를 사귀는 것과 함께 노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부끄러움도 많아서 자리에 일어나서 책 읽기는 절대 못 했고 칠판 앞에 서서 노래 부르기 음악 시험도 항상 불합격이었다. 이 소심한 성격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떤 계기로 인해 사라졌고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소심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준이는 닮지 않길 바랬다.
어제 아침 어린이집 물놀이 행사 문의로 오랜만에 원장 선생님과 통화했다.
제일 늦은 시간 하원을 하다 보니 남아 계시는 선생님께도 보채는 아이에게도 눈치가 보여 겨우 인사만 하고 나오는 경우가 거의 매일이다.
원장 선생님은 평소 대화 나눌 시간이 없었는데 잘되었다며 주절주절 이야기하셨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듣고 있었다가 순간 번개를 맞은 것 처럼 정신이 번쩍 뜨였다.
"어머니, 준이가 참 착해요. 그죠? 아주 많이 참고 견디고 있어요. 제일 일찍 와서 제일 늦게 가는데도 보채지도 않고 칭찬 많이 해주셔야 해요."
"이맘때 아이들이 장난감을 서로 뺏고 뺏기고 그래요. 근데 준이는 뺏기면 소리 내서 울긴 하는데 그냥 울기만 해요. 보통 아이들인 자기가 뺏기도 하고 뺏기기 전에 소리를 지르거나 하거든요"
"진수처럼... 큰 애들은 그런 반응을 보면 재밌어서 일부러 더 그러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한 번은 준이가 너무 당하는 것 같아 엄마 마음으로 너도 뺏으라고 했다니깐요. 선생님이 그러면 안되지만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이 무슨.
원장 선생님과 통화를 끊고는 멍하니 회사 휴게실에서 앉아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키즈카페에서도 놀고 있다가 옆에 다른 아이가 오면 눈치부터 봤고 갖고 싶다고 옆에서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내어 주기도 했다. 하고 싶은 장난감이나 놀이가 있으면 주변을 맴돌다가 아무도 없을 때 뛰어가서 놀이를 했다. 놀이를 하다가 다른 아이가 옆에만 와도 울어 버렸다. 그럴때 마다 우린 다른 아이의 기분을 살피며 준이에게 양보하라고 말했고 울음을 터트린 준이에게 그러면 안된다고만 했다.
이번 달부터 아이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어린이집으로 출동하자고 하면 타요를 보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신발을 신었는데 TV를 더 보겠다고 하거나 갑자기 과자를 달라고 하기도 했었다. 매일 어린이집 등원할 때 두 손에 들고 가던 자동차를 어린이집 앞에 도착하면 내 가방에 넣었고 하원 후에는 짜증이 늘었고 미끄럼틀을 타면서도 손에 쥐고 있는 장난감을 절대 놓지 않았다. 놀이터에서 옆에 다른 아이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울음소리를 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 장난감을 뺏어 갈까바 그랬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원장 선생님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준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삼시세끼 밥 잘 챙겨 먹고 다친 곳이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차' 싶었다.
'진수 이 노므...' 하며 괜한 다른 아이 탓을 하기도 했다.
어젯밤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우리의 교육에 따라 준이의 성격이 달라지고 어쩌면 미래도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책임의 무게가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느껴졌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 보다 친구들에게 양보만 가르쳤던 우리 행동도 아이의 스트레스에 한 부분을 차지 했을 것 같았다.
한참 듣고 있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놀이할 때 만이라도 아이에게 온전히 맡겨 보자고.
다치지 않게 옆에 있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자율성을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나는 혹여나 다칠까 봐 항상 옆에 붙어서 밀착 케어를 했고 남편은 혼자 놀면 심심해 할까바 항상 옆에서 놀아주었다. 밀착 케어로 아이가 다치지 않았고 함께 즐겁게 놀이를 했지만 준이 혼자서 이겨 내는 방법은 알려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의 변화를 위해 우리가 먼저 변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기준에 우리의 육아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먼저 준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어떤 행동이 더 좋은 것인지 함께 이야기 하기로 했다.
우리는 또래의 아이가 하는 보통의 행동들은 하게끔 놔두기로 했다.
우리가 앞서서 아이의 행동을 짐작해서 안된다고 막지 않기로 했다.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뺏기도 하고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는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 배워 가는 거니깐.
사회생활은 그런거라고.
아이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놀이도 찾아보았다. 밖에 나가 신나게 뛰어 노는 것이 제일 좋은 놀이였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로 펀치백도 사고 뿅망치도 샀다. 아이의 최애 이모와 함께 역할놀이로 어린이집에서 일어날 만한 상황을 연출해서 이럴땐 어떻게 하면 좋은지 간접적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놀이만큼은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기로 했다. 어떤 장난감으로 놀고 싶은지 준이가 정해서 가져오게끔 했고 그 다음에 어떤 놀이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하원 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드라마처럼 한순간에 아름다운 변화가 찾아오진 않았다. 천천히 조금씩 변했다.
나에게 놀이터는 전쟁터지만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놀이터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로 인해 일찍 시작된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이제서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