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이다. 결혼 준비할 때쯤 프리랜서로 전향해서 만삭까지 일을 했고 아이가 10개월쯤 되었을 때 다시 일을 시작했다.
1년 만에 출근을 했을 때였다.
'괜찮다, 괜찮다'를 백번 외치고 '나는 나쁜 엄마가 아니다'라며 마음을 잡았지만 아이의 첫 등원 날은 지금 떠올려도 먹먹할 만큼 마음이 아팠다.
복직을 결정하고부터 출근 당일까지 두려움과 걱정에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막상 출근해서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아이와 단둘이 있던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팀원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며 회의에 참여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뿌듯해졌다. 다들 별로라는 구내식당은 나에게는 꿀맛이었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화장실과 언제나 마실 수 있는 커피 한잔의 여유에 미소가 절로 머금어졌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요구사항으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일하는 즐거움이 소중했고 지금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처음 시작부터 잘못되었고 모두가 한숨을 토하며 클라이언트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 앞에 우린 한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결국은 팀원 대부분은 그만두었고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고 또 그들 중 절반은 그만두었다. 그들의 이유는 충분했고 당연했다.
다들 물었다.
"차장님은 괜찮아요? 버틸만해요?"
사람들은 나에게 정신력 갑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도 그만두고 싶어서 프로젝트가 얼마나 남았는지 매일 달력을 확인하고 나갈 명분을 찾으려고 했던 어젯밤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미 업계 소문이 자자한 최악의 클라이언트와 진행하는 것으로 회사명만 말했을 뿐인데 지원자가 없어 나간 자리가 채워지지 않아 공석인 자리가 꽤 있다.
아마도 예전의 나라면 진작에 다른 프로젝트를 찾아 나갔을 것 같다.
엄마라는 극한 직업의 경험치로 덕분에 레벨업이 되었는지 어느 정도 버틸만했다.
프리랜서는 프로젝트를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쉬울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프로젝트의 무사 오픈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난 뒤에 탈출한다. 나의 커리어에 중도 하차라는 이력을 남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도 컸다.
나는 프로젝트의 갑질보다는 퇴근 후 아이의 갑질이 더 큰 걱정이라 회사 생활에 크게 동요되지 않았고 단 하나의 감정이라도 아껴야 떼쓰는 아이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에 사소한 감정 소모는 낭비였다.
나는 칼퇴를 해서 아이 하원을 무사히 마칠 수만 있다면 다 참을 수 있었다.
아무리 말이 안 통하는 클라이언트라고 할지라도 대화가 되는 회의라도 할 수 있지만 아이의 무조건 울음 갑질 앞에서는 이성적이라는 단어는 없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의 갑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무릎을 꿇을 순 없다. 사실 저녁에 또 꿇어야 되기에 지금은 참아야 한다.
어떤 요구사항이라도 반복되면 예측 가능하고 대응 가능한 눈치라도 생기지만 아이의 심경은 1분 전, 1초 전의 무언가에 의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예측 불가이다. 섣부른 행동은 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프로젝트에는 계약서가 있고 그 안에 기간과 범위가 정해져 있어 어느 정도 선에서 협의가 이루어지지만 아이는 나의 노비 문서를 들고 있는지 쥐락펴락하며 자비도 없고 협의도 없다.
클라이언트의 감시가 너무 심해서 커피 사러 가는 것조차 눈치 보이는 것 보다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았다가 겨우 한번 가는 화장실의 문도 잠그지도 못하고 "엄마 여기 있어"라고 초 단위로 보고 해야 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래도 프로젝트는 정말 최악이면 중간에 그만둘 수 있지만 아이와 나의 계약은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중도 포기란 없다. 아이의 하루라도 빠른 자립을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야 된다.
오늘 내 옆자리에 앉은 새로 온 직원은 궁금한 것이 많아 보이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만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프로젝트와 육아가 비교되었다.
육아 커리어가 쌓이면 쌓일수록 인내심이 덤으로 따라 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