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원은 모처럼 일찍 마친 남편이 하기로 했다.
퇴근 후 지하철에 내려서 건어물 트럭 아저씨에게 나의 최애 안주인 버터 오징어를 사고 아이와 함께 먹을 옛날 통닭 한 마리를 사서 여유롭게 시장 구경을 하며 걸어서 집까지 갔다.
입구에서 마주친 위층 아주머니들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오늘 저녁이 아주 아름다울 것이라 기대했다.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 거며 공동 현관문 앞에 도착하자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들과 마주쳤다.
"아기 엄마 왔네! 그 집 아빠가 아기 안고 올라갔는데 울고불고 난리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후다닥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준이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그 와중에 아빠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그 앞에 얼굴에 땀범벅인 남편이 앉아 있었다.
"우리 준이, 울었어? 왜 울었어?"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던진 나의 한마디에 아이는 다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엄마에게 자신의 서러움을 알리고 싶었나 보다. 내 편인 엄마가 왔다는 것을 아빠에 알리고 싶었을까.
남편의 얼굴을 보니 훈육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선뜻 준이를 안아주거나 달래주지도 못하고 저리 우는 아이를 가만 두자니 남편이 너무 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뛰어서 일찍 왔더라면 괜찮을까 여유부린 것이 후회가 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오히려 내가 똥줄이 탔다. EBS 오은영 선생님을 부르고 싶었다.
남편의 말로는 어린이집에서 나오자마자 울더니 집으로 가기 싫다며 반대방향으로 뛰어가고 위험하게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가는 것을 겨우 잡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부터 길바닥에서 울고 불며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겨우 집까지 안고 왔단다. 남편의 바지와 외투에는 준이의 발자국이 마구마구 찍혀있었다.
안고 있어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발버둥을 얼마나 쳤을지 예상되었다.
요새 '나가요 병' 경보로 인해 지난주 내내 놀이터를 가거나 산책을 했었는데 워낙 편식이 심해 밖에서는 맨밥 말고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없고 적당히를 모르는 아직 아기라서 졸려서 눈을 끔벅끔벅거리면서도 절대 집에는 가지 않으려고 버티기를 한다.
배고파서 짜증 내는 아이가 안쓰러워 주머니에서 있던 미니 약과 한 개를 꺼내 먹인 적이 있는데 시금치 먹은 뽀빠이처럼 힘이 불끈 쏟았는지 다시 또 놀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하원할 때마다 약과를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그 조금 먹던 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마무리는 타요와 뽀로로의 힘을 빌려 겨우 유모차에 태워 집에 온다. 콧물감기를 달고 사는 것도 걱정인데 제대로 된 저녁밥을 먹지 않으니 남편과 나는 평일엔 되도록 집으로 곧장 가기로 정했지만 바깥놀이 재미를 알게 된 준이는 집으로 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누워서 울먹울먹 하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느라 남편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다. 세수를 하고 나온 남편은 숨을 고르더니 준이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준이 놀고 싶어서 아빠한테 그랬던 거야?"
"아빠랑 놀이터 나가서 놀까?"
"놀이터 가려면 울음 그쳐야 해. 그리고 일어나서 아빠한테 와"
대답 대신 고개만 흔들흔들하더니 입을 삐쭉삐쭉거리면서 울음을 겨우 삼킨 아이가 대답했다.
"으응"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는 몸을 한 바퀴 굴러서 아빠한테로 가는 아이는 이내 또 울고 다시 울음을 그치고 또 울었다. 나는 간식 가방에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와 빵, 보리차, 우유를 챙겨서 따라나섰다. 오늘 저녁밥은 포기하기로 했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활짝 웃는 아이를 보니 마음 한쪽이 아릿아릿했다.
놀이터 도착하자마자 뛰어가 미끄럼틀을 타며 신나게 놀더니 배가 고파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준비해온 간식을 먹고 또 놀기를 하고 난 후 지친 준이는 짜증내기 시작했고 휴대폰으로 타요 영상을 보여주며 집으로 가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저녁밥은 거의 먹지 않고 졸려서 울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인 후 대충 씻기고 서둘러 재웠다. 오늘 하루 제일 지쳤을 남편은 거실에 있기로 하고 아이와 함께 침실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잠을 재웠다. 거실에 나와보니 남편은 바닥난 정신력을 충전하기 위해 소파에 누워 있었고 나는 맥주는 커녕 생수 한잔으로 저녁을 때웠다.
남편은 편하게 소파에 누워 있었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준이에게 화를 낸 자신을 질책하고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제의 나도 그랬으니깐.
서로 말 없이 남편은 빨래를 나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 등원 준비를 했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내일 또 저러면 어쩌지?"
"글쎄..."
"준이가 우니깐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응..."
"근데 내가 준이라고 생각해 봤는데..."
아침 8시부터 6시 반까지 어린이집 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야외활동을 하지만 아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다른 친구들은 늦어도 4시면 하원을 하고 혼자 남은 아이는 어린이집 창문에서 놀이터에 친구들 노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엄마랑 놀이터 가야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엄마랑 아빠가 오면 재밌게 놀아야지' 기대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며 울지 않고 버티고 버티며 우리를 기다렸을 텐데.
답답했던 어린이집에 나오자마자 집으로 간다니 얼마나 슬펐을까.
가고 싶고 궁금한 것도 많을 텐데 얼마나 원했을까. 말을 못 하니 답답했을 테고 그 답답한 만큼 울었을 테고.
아이를 생각해서 집으로 곧장 데리고 왔지만 어쩌면 우리는 우리 편하자고 아이를 집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다. 밥이 뭐라고, 감기가 뭐라고 우리가 오기만을 하루 종일 기다려 준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아이를 위해 맞벌이를 한다지만 어쩌면 아이가 우릴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린이집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고 아팠다. 이런 내 마음보다 더 아팠을 아이를 생각하니 또 슬펐다.
"이제는 준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가야겠어. 놀이터든 어디든"
큰 다짐을 한 것처럼 다부진 목소리로 남편이 말했다.
깜깜한 침실로 들어간 우리는 먼저 자고 있는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손을 잡았다.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오늘을 반성하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천사 같은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늘 우리의 잘못과 아이의 우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우리가 더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