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사람 몸 아픈 사람
어느 연예인의 통증에 대하여 그녀가 받는 여러 민간 치료에 대하여 먹먹하게 바라본다. 삶에 애쓰는 그 통증의 차도로 약장사를 하고, 없을지도 모르는 종교적 믿음의 은총이라 떠벌리며 단상으로 밀어 올린다.
타인의 간증이라는 가식의 이름을 챙겨 삶을 지탱하는 시간 옆에 서있다는 사실에 진저리 친다. 사회와 종교가 결탁하여 벌린 아가리 속에 안주한다. 계급의 사다리에 목을 매는 안간힘의 영혼들이 너풀거리며 그 아가리로 돌진한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운운하면서 보이는 숫자에 연연하는 아이러니에 긴장한다.
세상의 어느 수준까지 오르고 싶은 건지 모른다. 오롯이 자신의 이익을 밝혀주는 곳으로만 길이 나있다고 믿는 듯이 걸어간다. 착각의 세월을 유유히 적시는 눈물을 닦을 순간이 오려는지는 알 수 없다.
불손한 영혼이 흐릿하게 걸어가는 모습에 지금껏 가득 실어 두었던 마음을 걷어 낸다. 소비된 결핍과 팔려간 통증에 통곡한다. 무기력해지는 목소리, 미동하지 않는 얼굴 근육, 파랗게 떨고 있는 손목의 정맥이 온기를 포기한다. 그런 휘몰림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가 이제야 마음에 들어온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러고도 괜찮은지 깊은 호기심을 털어낼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갖가지 색깔로 걸어온 시간들을 하나씩 접으며 옳음과 그름 사이 굵은 선 위를 천천히 움직인다. 그름의 필연과 옳음의 가식을 제대로 보려 멈추어 있다. 진심으로 닿기를 얼마나 바랐었던가.
어차피 지금이라고 받아들인다. 쓸모없이 겉돌았던 언저리에서 뒤돌아 선다. 의심이 많으면 누구에게도 자신을 열어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던 건가. 이제는 세상을 향해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소비를 해도 옳은가. 인지부조화의 정당성 따위는 없다.
치이고 치이며 깨닫게 된 거대한 씽크홀 같은 이기의 우물, 세상은 그렇게 타인의 고통과 갈증을 소비하며 지탱한다. 인문학을 입에 매달고 살면서도 인간 중심이 아니고, 철학을 뒤적였다 과시하면서도 삶은 천하에 양아치인 세상을 탓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그래서 오늘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