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그 본질에 관하여

[영화] 내 이름은 by 정지용 감독, 2026

by 서희복

너는 이렇게 사는 거야, 바로 그 이름으로. 나를 이렇게 불러줘, 네가 그래야 내 이름이 되는 거야.


본능과 욕구가 힘에 기댄다. 삶과 죽음이 가르는 남은 사람의 편리한 상처, 해리, 기억 상실, 억압이 마음을 흔들고 그 안에 자리 잡은 모래탑에 비를 내린다.


제대로의 현실을 살지 못하는 두려운 퍼즐 조각같은 시간들, 생이 지속되는 내내 그 자리에 흔적을 남긴다. 모든 기억이 또렷해져 감정을 분배해도 이미 나는 죽은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어눌한 레고블록 같은 목소리가 바닥으로 납작하게 깔린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단호하고 단아한 척 다 토해 내라고 한다. 살짝 비뚤어져 포개진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샌다. 기억해 봐요.


나약하고 아픈 영혼을 위해 좌우로 흔드는 손가락의 힘은 물풀이 흘러내리듯 자연스럽다. 스타카토 소리 위에 얹힌 불협이 묘하다. 정작 자신을 둘러싼 삶은 권위와 힘에 뿌리를 묻고 그로부터 나온 폭력이 대를 잇는다. 미숙한 아이, 거만한 태도, 과시의 눈꼬리, 인지부조화를 누구보다 더 잘 알아야 할 치유자의 껍데기가 바람에 흩날린다.


무의식 속에 새겨진 이름을 한편에 붙잡아 두고 새롭게 비상하고 싶다. 일그러진 영웅의 등에 달린 힘센 뿔에 나의 새 이름을 달아 매고 내가 아닌 나를 불러내 다른 나로 살고 싶다. 비굴의 앞잡이가 되어 비루를 입는다.


살짝 꼬아 비튼 익숙한 남고 교실 서사에, 비겁하게 쫓다 잃어버리고 비아냥을 안아야 하는 쓰라림에, 자기 앞가림이라는 범위에 대해 의구심을 남기는 전문가에, 쌓아둔 돈봉투를 짤랑거리며 호객하는 누추한 이미지에, 어디선가 마주쳤던 수많은 장면들로부터의 불편함은 여전하다. 항상 거기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스토리를 받치는 힘은 원래 그곳의 혼을 받아 자란 성씨의 사람일 것이다. 성을 따라와 달린 그 이름일 것이다. 정치적 휘말림 속에 잔인하게 뭉개진 수만 명의 이름으로 세워진 기념패나 비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제대로 깨어있는 단 한 사람이 희망이다.


그렇게 온전했던 그 한 사람이 이념의 총구에 사라진 사건이 그 해 쉴 새 없이 벌어진 것이다. 피 묻은 총구가 지나가는 벌판에서 타인을 손에 쥐고 살아남아 그 이후의 삶 내내 억압된 죄책감에 통곡하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을 위한 새 이름의 틈을 벌리려 비틀린 힘에 기대 바꿔보려던 어린 심장에 큰 구멍이 났을 것이다. 그 흉터로 평생을 견뎌내야 하는 건 오로지 그 자신의 몫이다.


죽음과 삶의 화해를 이뤄내고 그 땅의 기운과 함께 한 새 사람이 온다. 서로의 가슴을 메우고 상처를 품고도 새로 태어난 생명은 한 다발의 꽃을 들고 아픈 상처의 기억을 위로한다.


무고한 죽음이 남긴 파편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억압된 서사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