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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아 닭아 밝은 닭아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by 홍상수 감독, 2025

by 서희복

변수보다 상수를 선택했다. 반복의 민망함이 심장을 짓눌러서 지금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답답했던지 그의 세계를 너무 알아듣게 꼬집어 내는 불투명한 존재적 미약을 흠뻑 뒤집어쓰고 나왔다. 내 극한의 예민함도 한몫이다.


그의 영화는 차별적이다. 자연 대 사람, 여자 대 남자, 멀쩡한 위선의 겉치레와 바짝 그을러 버린 비루의 내면이 적나라하다.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는데 평범한 일상 같은데 숨어 버리고 싶게 하는 그만의 장르다.


사람보다 더 수다스러운 닭소리, 개소리, 수다가 아니라 의도였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 둘이 얘기할 때 닭의 비명과 외침이 극도에 다다르는 지점에서 마구 웃었다. 의도된 가식의 톤과 느릿하게 지루한 핵심 없는 뱉음을 듣느니 차라리 닭소리, 개소리를 통역하는데 시간을 쓰겠다. 초월한 듯한 세상의 거리, 그깟 알코올로 다 드러날 거면서.


산을 뭉텅 떠다가 사는 사람들 속에서 자기 안의 고립과 밖을 향한 냉소를 읽는다. 초라함을 애써 감추려는 언어적 미숙에 그 부끄러움을 뭉텅 떠안으며 내 안의 나를 끄집어낸다. 뿌옇게 휘발시키고 싶은 내가 뱉은 파편들이 다시 내게 날아들어 상처를 낸다. 손가락질을 과장되게 하는 것도 아닌데 웃다가 슬며시 심각하다.


인간으로 생겨났으니 그 덩어리만큼 사는 것이다. 시인이라는 이미지만 가득 안고 시인으로 위장한 어눌함이 드러날 때, 대체 불가능일 것 같은 기성세대의 아집이 빛나고, 시커멓게 꼿꼿한 상대를 향한 부드러운 독설들이 스멀거릴 때, 덜 익은 심장은 세포 하나씩 팔아먹어가며 오염되는 것이다.


지킬 미덕을 지키라는, 뭔지도 모르는 자기 책임을 다하라는, 망가질 것을 대비하며 살라는 진부함 너머에 언제 마주해도 민망하지 않을 자신의 모습을 한 번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임을 이미 알지만.


상수보다 변수를 택하는 편이다. 그게 안정이라서. 가끔씩만 상수에게 세상을 맡겨 나를 뒤적거릴 것이다. 부끄러움을 기억할 수 있도록, 조금은 더 겸손하게 멀찍이서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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