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겹겹의 무게 속, 얇디얇은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2025

by 서희복

by 파얄 카파디아 감독


애초부터 아이가 엉성하게 흔드는 춤사위 손끝으로부터 빛이 흘러나와 세상에 퍼진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누구나 지나치는 그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용기 내어 손을 뻗어야 간신히 닿을 수 있는 그곳에 그녀들이 있고 네가 있고 또 내가 있다.


시간을 홀연히 휘발시키는 꿈결 같은 도시에서 끈적하게 흐르는 땀으로 왔다가, 서늘히 사라지는 갈망들로 가득한 시선들이 외롭고 바쁘다. 가 있는 어느 곳으로부터 무작정 도착한 간 서러움에 먼 거리의 낯선 몸짓을 더한다. 과거 어느 시간으로 들어가 버린 붉은 흔적은 현재의 시어와 헝클어 섞이며 그녀를 깨운다. 욕망이 허락되지 않는 탁한 안갯속에서 서로를 부비며 찾아가는 '살아있음'에 대한 확인, '살려는' 몸부림에 대한 기록이다. 마음을 후비는 회색의 공백들 사이에서 절망하다가도 바람처럼 지나가려다 이어지는 온기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서로가 속한 곳에서 금기의 경계로 발을 옮기는 용기는 오롯한 사랑으로 수렴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심장에 담긴 그 온도는 거짓이 가능하지 않다. 누가 정해둔 금기의 룰인가. 타인에 대한 타문화에 대한 부끄러운 배타성을 그대로 드러내려는 그 지점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하나를 본다, 아니 하나가 된 둘을 나에게 이내 들여놓는다.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삶에서 목이 멘다. 수십 년간 옷걸이에 걸린 듯 뜨겁게 살며 허우적대던 시간이 물거품이 되고 옷걸이가 사라지자 같이 사라져 버린 정체성과 그 흔적들, 페미니스트적 장면의 모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처절하게 현실적이다. 자신이 돋아날 수 있는 곳으로의 여로는 빛으로의 돌파구다. 동행하는 힘 또한 그렇다.

바다는 전부 받아 안는다. 도시가 토해 낸 어둠과 그늘을 파도로 쓸어가며 마음의 소리를 보낸다. 물결에 밀려온 위안을 가장한 목소리를 가만히 물리치는 그녀의 단정하고 단호한 목소리에서 힘을 얻는다.


빨강을 안은 그녀의 오래 묵은 고독이 내 심장으로 달려들어 그대로 함께 곤두박질친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내게도 온 적이 있었다, 뜨거운 슬픔이 덕지덕지 묻은 차가운 몸뚱이로. 그 마저 내게는 빛으로 남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