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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건축가 Jul 20. 2019

행태를짓다5

창문

주 : 오랫동안 다듬어 온 원고를 조금씩 풀어놓습니다.


창문


벽, 문, 바닥과 함께 건축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로 ‘창문’을 들 수 있다. 창문은 벽에 뚫린 구멍으로, 벽이 수행하는 ‘공간 통제’를 누그러뜨리고, 섬세하게 다듬고, 가끔은 오히려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창문은 공간 안팎으로 바람과 햇볕과 시선을 이어준다.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두고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 한다든지, 모니터에 보이는 작업 영역을 ‘윈도/window’라 하는 것처럼, 창문의 개념 역시 본래의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 빗대어 널리 활용된다. 


창문은 건물의 정체와 쓰임새를 드러내는 유력한 표현의 수단이다. 겉으로는 건물의 구성 방식과 성격을 드러내고, 안으로는 개별 공간의 색깔과 적절한 쓰임새를 제시한다. 잘 디자인된 창문은 ‘이 공간이 어떻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유력한 표현의 수단이 된다. 공간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기 위한 단서가 된다. 


이를테면 겉에서 보이는 학교는 네모난 창문이 지루하게 반복되며 늘어선 모습이다. 많은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설임을 알 수 있고, 반복되는 창문 패턴만큼이나 이 곳에서 펼쳐지는 생활 역시 지루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교실 안에서의 풍경은 한쪽 벽면 가득 창문이 뚫린 모습이다. 아주 작은 응달도, 한 조각의 음침한 구석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창문 가득 들어오는 밝은 햇살 아래, 적어도 교실 안에서는 선생님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구석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교실 안의 모든 책상에 가능한 비슷한 만큼의 햇볕을 골고루 나눠주겠다는 생각 또한 읽을 수 있다. 바깥으로 보이는 창문의 패턴과 교실 안에서 나타나는 창문의 표정을 통해 읽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공공교육의 철학이다. 같은 식으로, 아파트의 창문 패턴을 통해서는 대량으로 쉽게 사고 팔릴 수 있어야 하는 상품으로써의 주택의 속성을 읽을 수 있고, 모텔의 창문 패턴을 통해서는 익명으로 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주차타워나 대형 창고, 공장 등 창문이 없는 건물을 보면서는, 사람이 아닌 자동차나 물건, 기계를 위한 시설임을 짐작하게 된다. 


창문의 배열과 짜임새를 통해 한층 더 정교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모든 건물이 어느 정도는 그러하겠지만, 특히 어떤 특정한 기능 한 가지만을 정확하게 수행하기 위한 건물인 경우, 건물은 그 기능을 정확히 수행하기 위한 차가운 기계가 되고, 건물을 이루는 각각의 건축요소들은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는 부품이 된다. 여러 요소들 가운데에서도 창문은 특히 더 요긴하게 활용된다. 바닥이나 벽, 지붕 같은 것들에 비해 견뎌야 할 조건이나 짊어져야 할 기능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볍기에, 변형과 응용의 가능성이 넓기 때문일 것이다.



‘남영동대공분소’가 아주 좋은 예다. 영화 ‘1987’(2018)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건물로, 군사독재 시절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유명 건축가 김수근 씨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건축가가 즐겨 쓰던 검은 전벽돌로 마감된 7층 건물인데, 넓은 창문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와중에 유독 5층의 창문들만 좁고 기다란 모양인 것이 눈길을 끈다. 내부 공간의 쓰임새에 답이 있다. 고문 현장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고문 도중 고통을 못 이겨 창 바깥으로 투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고개를 내밀기도 어려울 정도의 좁은 창문을 낸 것이다. 한편, 호텔이나 병원처럼 가운데 복도를 두고 좌우로 ‘고문실’들이 늘어서 있는데, 마주하는 방의 문들을 엇갈리게 배치하여 방 안에서 문을 열었을 때 건너편 방문이 아닌 복도가 보이게 되어있는 것도 특이하다. 다른 방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감추어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성이라는 것이다. 방향감각에 혼란을 주기 위해서 5층 고문실로 직결되는 별개의 계단을 나선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건물 전체가 커다란 ‘고문 기계’인 것이나 다름없겠다. 건축가의 윤리의식을 돌아보게 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건축이 갖고 있는 통제장치로서의 힘을 확인하고 탐구하는 공부 거리가 되기도 한다. 


작업노트 / 모자이크하우스


도시형 생활주택 설계 의뢰를 받았다. 대지는 대학생들이 많이 모여 살기로 유명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법규 검토를 마치고 최대한의 용적과 최적의 평면을 찾아낸 뒤 집중했던 일은, 흔히 ‘다세대주택’이나 ‘원룸주택’이라고 불리는, ‘동네 건물’의 타이폴로지(類型/유형)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동네 건물’과 ‘동네 풍경’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고, ‘동네 풍경’에 이바지할 수 있는 ‘동네 건물’의 대안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평범한 건물들이 어떻게 생겼길래 그 건물들로 이루어진 동네 풍경이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서 디자인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원룸주택’의 원룸들은 각자 바깥을 향해 동일한 방식과 크기로, 바깥을 향해 한껏 열려 있었는데, 그것이 건물이 지루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큰 이유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한껏 열린 발코니의 넓은 유리면이 정작 블라인드나 커튼, 잡동사니 등으로 갑갑하게 가려놓은 모습이 의아했다.



원룸은 보편적인 수요에 대응하는 상품이기에, 가능한 동등한 조건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서 지루하지 않은 표정을 띄기 위해서는, 비슷한 정도로 열리되 다양한 형상을 한, 여러 타입의 창문 모양을 계획하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동일한 유닛이 반복되는 상황이지만, 세 가지의 발코니 입면을 무작위로 배열하면 자못 느슨해 보이는 입면이 연출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랜덤 패턴을 에어컨 실외기를 모아 놓은 발코니와 복도, 계단 등의 개구부와 섞어 보았다. 그 결과, ‘동일한 유닛의 반복’이라는, 타이폴로지에 기인한 태생적인 코드를 지워낼 수 있었다.



몇 개의 유닛이 어떻게 모여서 이루어진 원룸주택인지, 겉에서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 건물은, 추상적인 패턴으로 채워진 단순한 윤곽으로 정리되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유닛들이 모여 추상적인 집합을 이루는 건물의 구성 방식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서 익명의 집합을 이루는 도시에서의 삶의 모습과 제법 닮아 보인다. 우리는 나름의 개성을 갖고 타인으로부터 구분되기를 원하는 동시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익명의 알갱이로 남고 싶어 한다. 그런 공동체를 담는 그릇이라면, 지루하게 반복되어 황량한 표정이 아닌, 조금은 친밀하고 인간적인 표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거리를 향해, 동네를 향해, 그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건물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런 뜻에서 이름을 ‘모자이크 하우스’라고 지었다.


다음 조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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