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주입만으로는 안되는 시대
눈 깜박하면 새로운 AI 툴이 출시되는 요즘입니다. 처음 GPT를 접했을 때는 마치 마법 같았는데, 이제는 GPT 없이는 살 수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이 현상을 '수확 가속의 법칙'이라고 칭했습니다. 이는 기술이 축적될수록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그에 따라 정보량도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인간의 습득 속도는 훨씬 느립니다. 인간의 뇌는 이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뇌 용량에 한계도 분명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는 뇌의 특성상, 사람들은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기존의 지식을 차마 버릴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 배운 것이 오늘 쓸모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지식의 유효기간은 너무나 짧아졌습니다.
이제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단순히 사내 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운영하는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HRD는 직무/역량/직급별로 레벨을 나누어 연간 교육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이 주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기업에서 그렇게 운영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연간 교육 로드맵'을 만드는 게 HRD의 핵심 역할처럼 여겨졌던 것이죠.
이때 '교육'이라고 함은, 대개 강의 형식으로 구성됩니다. 섭외한 강사가 지식을 전달하면, 참여자는 앉아서 듣는 방식입니다. 물론 중간에 조별 토의나 발표 등 다양한 형식을 도입해 수강자의 참여도와 집중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식 전달'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그 방식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어제 새로웠던 정보가 오늘은 구식이 되어버립니다. 지금 있는 직무가 몇 년 뒤엔 사라질 수도 있고, 지금은 없는 직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처럼 직무를 분석하고, 역량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설계하는 방식은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정교한 커리큘럼’을 오래 들여다보며 만들고 났더니, 막상 실행할 땐 이미 새로운 변화가 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앞서 얘기했듯이,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변화를 거부합니다.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이 HRD인데, 이러다간 헛된 교육 테트리스 블록만 그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교육’에만 집중하고 있었을까?"
물론 교육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전문적 지식을 빠르게 알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HRD의 본질은 단순히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구성원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꼭 교육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조직 환경 속에서, 구성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경험을 설계하고, 시도해볼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일. 그게 지금의 HRD에게 더 중요한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에서 더 나아가, ‘배운 것을 실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 안에서 실패도 해보고, 다시 시도도 해보는 경험 자체가 성장의 자산이 되도록 일련의 경험을 설계하는 것. 마치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는 경험을 하면서 크는 것처럼, 성인의 교육에서도 그 부분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쿵 저러쿵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제 요지는 딱 하나입니다. 이제 HRD도 UX 디자이너가 되어야 합니다. 구성원을 ‘사용자’로 바라보고, 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로서 역할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UX의 법칙 속에서 HRD가 가져갈 수 있는 관점을 하나씩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UX는 단순히 사용하기 편리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방법이 아닙니다. 사용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경험 설계의 언어입니다. 이는 HRD가 고민하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잘 배우고, 성장하며 변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HRD와 UX의 지향점이 동일한 것이죠.
따라서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주요 UX 이론들을 살펴보고, 그것이 HRD 실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끄적여보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업무에 적용해보면 좋을 포인트, 제 경험 등을 녹여나갈 예정입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HRD를 바라보고 싶은 실무자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