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을 자녀로 둔 친구 여럿이 수능 시대를 일단락하던 날, 저는 과거가 된 한 시절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편집자인 저는 출판 지인들께 내돌림당했던 초고를 추석 지나 브런치로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1편을 발행하자마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없어(친구 빼고) 괜한 짓을 했다 후회했습니다. 그때 일면식도 없던 한 분의 독자가 생겼고, 매 회 그분의 응원에 힘입어(어째 22화는 안 읽으셔서 브런치북 편집 때 뺄까 말까 엄청 고민했죠) 회사 다니는 틈틈이 개고하고 그림을 덧해 브런치북을 완성했습니다.
마침 브런치북을 펴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북 출판 지원 프로젝트에 응모하면서, 그렇게까지 힘 줄 필요 없었는데 너무 몰라 고생했구나 싶었습니다. 하여 제게 힘을 준 그분을 떠올려, 저처럼 첫 도전장을 내시는 누군가에게 종이책을 만든 경험을 바탕하여 몇 자 전합니다.
1.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브런치에 입장하셨으니 잘들 아실 텐데, 저는 그 문턱 넘는 것도 망설였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지도, SNS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 아날로거 아줌마라 디지털 글쓰기가 만만치 않았거든요. 어쨌든 '작가 소개-향후 글 계획-글 2~3개-활동 SNS-브런치 주소(개인 계정)'를 준비하여 작가 신청 후 통과한 여러분이니, 이 부분은 아시겠어서 이만 패스~.
2. 브런치북은 집 짓기입니다.
어떤 집을 지을지 정해야 합니다. 카페냐 가정집이냐에 따라 집의 모양과 위치가 달라지듯, 브런치북으로 발행할 글도 에세이냐 정보글이냐 인문서냐에 따라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쓸지 달라져야겠지요?
물론 저는 '여행에세이'를 썼고, 이에 가까운 책짓기를 소개할 터입니다.
3. 컨셉트를 정하고 이에 맞는 글을 골라 묶습니다.
다작할 수 있는 경우 브런치를 글쓰는 훈련소로 삼아도 되고 더러 이곳을 마케팅 플랫폼으로 삼는 재주 많은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짬도 없거니와 뛰어난 역량의 저자는 더더욱 아니어서 미리 쓸 방향을 정하고 글을 몰아가는 경제적 글쓰기를 이어갔습니다. 여기선 글쓰는 과정 또한 패스~.
어떤 경우든 브런치북으로 발행하려면 1주제(컨셉트)로 수렴될 10꼭지 이상(브런치팀의 기준)만 충족하면 되던데, 저는 그걸 몰라 23꼭지 결말까지 다 묶었네요.
4. 종이책 한 권을 상상하여 묶습니다.
이때 원고의 총 분량은 신국판 편집(아래한글프로그램에서 미리 편집) 기준입니다.
(이 항목은 아날로거인 제 기준이어서 요즘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고 브런치북 정책과 상관없을 수 있어, 저처럼 종이책같이 만들고 싶은 분들만 읽으시기 바랍니다)
원고의 분량은 신국판으로 편집 시 200페이지 전후 기준.
아래한글프로그램으로 글쓰기 전, f7 누르면 책 크기 고르는 데서 신국판 선택.
(위아래 15센티미터 여백, 좌우 23~25센티미터 여백)+(본문 글자 크기 10포인트, 행간은 글자 간격 160~170%) 설정
결과적으로 대략 가로 9~10센티, 한 페이지 20~24줄 길이의 일반 책자대로의 글밥이 한 페이지에 들어가게 됨. 이로써 페이지로 전체 글의 양 가늠.
1꼭지(소제목을 단 한 편의 글)당 6~7페이지 전후 분량을 기준하면 1권당 총 20~25꼭지 원고가 필요하겠죠?(이미지 별도/200쪽 전후) 요즘엔 호흡 긴 글은 인기가 없다니 3~5페이지에 시각적 자료를 풍부하게 하여 쓰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페이지 상관없이 주제의식 분명한 10꼭지라면 브런치북 발행은 가능했습니다. 저는 고루한 사람이라 종이책 스타일을 고집했습니다.
5. 편집하기
글의 컨셉트를 드러낼 보조 자료로 저작권상 문제 없을 사진이나 그림을 찾아 넣으면 읽기 편하고 보기도 좋다는 건 다 아시죠? 이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지만, 저는 취미로 배워둔 드로잉을 활용해서 그림을 넣었습니다. 저의 경우 개인적 여행 지도가 있으면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단 생각에서였습니다.
이때 제목 바탕 그림은 가로형이 나았는데, 그건 나중에 알아 미처 고치지 못했습니다.
아무쪼록 브런치 오른쪽 바 기능과 글 편집 기능을 잘 쓰시는 분이 많으니, 모르는 저는 이 부분 대강 씁니다.
6. 발행 전 퇴고하기
충분히 퇴고해야 합니다. 한번 브런치북으로 발행하고 나면 내용 수정이 어렵다네요.
저는 디지털 세대가 아니라서 시행착오 끝에 첫 글을 제 데스크탑에 저장하고(작가의 서랍을 활용해도 되는데, 블록 지정을 잘못해서 몇 번 날려먹은 후 되돌리기 기능을 몰라 그리했습니다) 퇴고를 거친 후, 발행 전 모바일 미리보기로 읽기하여 여러번 고쳤습니다.
이때 제가 삼은 퇴고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주술 호응 등 글의 문법적 퇴고는 다 아실 터라 생략)
한 편의 글이 전하고자 하는 소주제가 브런치북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수렴되는가. : 그렇지 않은 글은 묶음에서 배제하되, 편마다의 주제(소주제)를 드러내는 데 방해되는 문장 또한 지웁니다. 물론 남의 글을 벌겋게 고치던 저도 제 글을 객관화하는 게 얼마나 어렵던지, 작가님 글을 가감없이 교열했던 걸 반성했습니다.
쓰기는 곧 말하기임을 염두합니다. : 독자에게 건네는 이야기이니 저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버리든지, 숫돌 갈듯 생각을 벼러야 합니다. 물론 저도 어려운 부분이어서 잘 되지 않았음을 미리 고백합니다.
7. 브런치북 발행하기
총 10개 목차를 넘어가면 더 이상 업로드가 안 되어 당황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저는 총 23편을 준비했는데, 몇 편을 골라 버리자니 흐름이 끊기고 더이상 고칠 여력도 없어 고민하다 다른 방법을 알게 되어 전체를 묶었습니다. 물론 미리 알고 10편만 준비하는 똑똑한 분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쨌든 저의 경우 23편을 5개로 나누어 여러 편을 한 파트로 묶음한 후 5개 파트를 5개 목차인 양 업로드했습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그리 많은 글이 아니어도 브런치북 발행은 가능합니다. 저는 종이책처럼 쓰려 욕심 내다 그리되었습니다.
8. 브런치북 소개하기
발행 단계상 표지를 만들고 소개글을 쓸 무렵, 저는 처음의 고민과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왜 브런치북을 만드는지, 과거가 된 남편의 사업 실패를 만천하 공개하면서 마치 저작권 허락 없이 글을 게재하는 듯한 죄책감에 남편 눈치를 엄청 봤습니다.(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남편에겐 브런치북 발행을 비밀에 부치고 있습니다ㅠㅠ)
그리고 처음 글을 쓸 때의 마음을 떠올려, 제 브런치북을 소개하는 글(종이책으로 치자면 머리말)을 썼습니다.
‘...이후 삶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여행이었다. 하여 엄마를 잠시 멈추고 남편과 한 달 간 이별한 채 홀로 여행하는 사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답을 찾으려 애썼다...'
이로써 실패한 과거를 진짜로!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마무리되기까지 '저장하기'를 눌러 두면 단계별 작가의 서랍에 고스란히 발행 전의 브런치북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브런치북 표지 오른쪽 상단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얼마든지 표지며 목차며 소개글 등 수정이 가능했습니다.
9. 브런치북 주소 만들기
발행하기 단계를 따라가다 보면 주소를 정하라던데, 계정을 쓰는 건지 어떤지 몰라 브런치북팀에 메일을 띄웠더니 다음과 같은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브런치 프로필 주소와는 별개로 브런치북만의 주소를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글 성격에 어울리는 번지수를 만들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여 "여행하는 사이"란 제 첫 브런치북은 https://brunch.co.kr/brunchbook/ontheroad에 앉혔습니다. 그곳을 기웃댈 독자가 있을지 없을지는 제 몫이 아니니 그냥 그렇게~.
10. 아무쪼록 글 쓰는 훈련은 미리 해두시는 편이 낫습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 뭐 다 아실 테죠. 이중에서 저는 다상량이 차이 나는 글쓰기의 핵심이라 여깁니다. 각 꼭지마다 소주제라 칭한 자기 생각이 명료해야 하는데, 물론 이 부분 저 또한 아마추어랍니다.
ps. 브런치북 친구로 만나뵙길 바랍니다.
마침 주말, 김연수 작가님의 <시절일기>를 발견해 겸허히 독자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머리말만 읽고도 옴팡지게 빠져드는, 너~~~무 좋은 글입니다. 부럽기도 하고 글감옥에 사는 것보다 독자로 있는 제가 더 행복한 것도 같아 당분간 이 책 안에 갇혀 있을 생각입니다.
어쩌다 비슷한 생각을 발견하곤(당연히 제가 썼던 것보다 훨씬 명료하고 훌륭한 표현이시죠) 놀랐습니다. 제 나이 50이 넘고 보니 연애소설은 당연 재미없어졌고 너무 어린 친구들의 글은 제겐 지나간 연애편지 같아 읽을 만한 책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대던 때라, 정말 쏙 빠져들었습니다.
이제 매일같이 드나들던 제 서랍을 닫고 당분간 좋은 글을 읽는 행복한 독자로 지내볼 작정입니다. 하여 글 쓰시는 많은 분들이 맛깔난 브런치북으로 저를 초대해 주시면 여기 브런치도 기웃대겠 감사하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