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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금요일 Mar 28. 2019

제주에서, 사소한 삶-5

작별하는 섬


옛날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니까 제주로 떠나올 때의 생각 같은 거. 나는 자주 가던 커피숍 사장님에게 아무런 인사를 하지 못하고 그냥 제주도로 왔다. 일주일이면 세 번 쯤 가서 점심을 먹는 식당이 있었고 그 식당의 사장님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모!”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이모에게도 이제 자주 올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왔다.

사실 어디 그것뿐일까.

여태 나는 일상을 나누던 사람들과 작별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다. 나는 흐릿하고 멍청하게 헤어지는 사람이다.




제주에서 나는 같은 이에게 두 번의 작별 인사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헤아리자면 두 번의 재회와 두 번의 헤어짐이 있었다.
그의 가족은 우리 가게의 손님이었다.

아이가 둘이었는데, 둘을 모두 데려 올 때도 있었고, 큰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아내와 함께 셋이 올 때도 있었다. 아빠와 아이만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크게 다감하게 굴지 않았다. 나 역시 손님에게 아주 다정한 주인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예의를 갖춘 눈인사와 가끔씩 짓는 미소만으로 연결된 관계였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조금씩 따뜻하게 데워졌다.

나는 새로운 디저트가 준비되면 그들에게 먼저 권유하거나 샐러드를 조금씩 더 내주었다. 그들은 우리의 신메뉴를 주문하는 데 거침이 없어졌고, 나의 추천 메뉴를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손님이 많을 때면, 그들은 순서를 양보하기도 했고, 나는 염치도 없이 한 시간 씩 기다리게도 했다.

그러면 또 그들은 말없이 앉아 그렇게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커피나 다른 음료를 내다주었고, 아이들을 위한 아이스크림을 갖다 주기도 했다. 한 번은 조리가 잘못된 음식을 내놓게 되었는데 그것을 새로 만드는 데에 시간이 엄청 걸렸다. 그들은 항의하거나 불쾌해하지 않고, 만화책을 읽으며 기다려주었다.



몇 개월 뒤 가게가 비좁아서 조금 더 넓은 곳으로 확장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전 공사를 하는 한 달 동안 그들 부부가 네 번쯤 찾아왔다. 공사가 언제 끝나는지 물었고, 오픈 첫날 헤매지 않고 오려고 사전 답사 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 마음에 갑자기 더운 불이 확 지펴지면 사람은 당황한다.
그렇게 이전한 곳에서 그들 가족들을 위해서 여러 번 식사를 준비했다.

파스타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을 때는 더 조심스럽게 놓았고, 그들 아이들을 위해서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디저트를 자주 준비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셨어요?, 오늘은 아이들이 안 보이네요! 이런 인사들을 주고받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그가 혼자 와서는 이제 서울로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고, 남편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돌아서서 얼굴을 찡그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에게 서둘러 와인 한 병을 선물로 안겼다. 통성명도 하지 않은 이에게 와인을 선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갖고 있는 좋은 게 더 있다면 그것까지 더 주고 싶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잊었(을 거)다.
해가 바뀌었던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기 어려운데, 손님이 뜸한 시간에 잊은 줄 알았던 그가 딸과 함께 불쑥 가게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깜짝 놀랐다. 여행을 왔나?
저 다시 돌아왔어요. 원래 일하던 곳에서 다시 일해요. 와이프는 지금 짐 정리 하고 있어요.
깜짝이야. 정말 깜짝 놀랐다. 덥석 그를 안을 수 없었지만 정말 반가웠다. 그냥 와도 되는데, 다시 만난 선물이라며 파운드케이크를 사왔던 것 같다. 와,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거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그들의 단골 가게가 되었고, 그들은 다시 우리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 관계가 먼저 바스라진 것은 순전히 우리 때문이었다. 나는 식당 노동을 견디지 못한 채 날이면 날마다 아팠다. 어제 아픈 곳은 오늘도 아팠는데, 오늘은 또 새로운 곳이 추가로 아팠다.

그렇게 아픈 곳이 늘어나면서 이제 식당 노동을 그만하자고 했고, 우리는 일단 무엇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하면 그런 것만큼은 정말 순식간에 실행하는 사람들이라 곧장 휴업에 들어갔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홀가분해졌지만, 마음에 맺히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를 찾아 주었던 단골손님들에게 우리는 일방적인 절교 선언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 마음 편할 리 없는 일이다.
일정 기간 휴식을 하고, 새로운 종류의 가게를 준비하면서 그 불편한 마음들은 조금씩 잊었다. 일주일에 한번쯤 생각나던 단골손님의 얼굴들은 한 달에 한 번쯤으로 좀 뜸하게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성격의 가게를 새로 열었는데, 드문드문 소문을 듣고 옛날의 손님들이 반갑게 걸음을 해주면, 크게 환호하며 알은체를 하고 더 크게 몸을 접어 꾸벅 인사를 했다.
여름이 다 지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조금 요란스럽게 났고, 키가 큰 남자와 아담한 체구의 여자가 가게 간판을 확인하며 들어왔다.
어세오세요. 인사를 하기도 전에 남자 손님의 볼멘 항의가 들려왔다.
아니, 가게를 옮기실 거면 말씀을 해주셔야죠! 물어물어 찾아왔잖아요!
그들이었다. 그들!
이 동네 주차하기 정말 힘드네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 부끄러웠다.

저렇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 덕에 우리의 커다란 약점 하나가 분명하게 표면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잘 헤어지지 못하는 부류였던 것이다. 잘 헤어지는 법을 몰라서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 그것 때문에 많은 관계들이 끝내 허물어져버리도록 내버려두는 정말 미성숙한 부류였던 것이다. 반면에 그들은 관계를 어떻게 회복시키는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제주에서 제법 큰 병원의 응급센터에서 일하는 의사였는데, 응급한 환자 뿐 아니라 가망 없는 관계 회복에도 능한 모양이었다.
멀어서 좀 아쉬운데, 그래도 또 올게요.
네, 멀어서 죄송해요. 또 오세요.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다시 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도 왔다.



얼마 전이었다.
저희 이제 정말로 제주도 떠나요. 오늘은 마지막 인사하러 왔어요.
정말요? 다시 안 오세요?
네, 살러 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여행으로 와야죠.
나는 그들을 위해서 스튜를 끓이는 동안 남편에게 말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내가 정말 작별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그걸 잘해야 친구가 되는 것 같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이 이제 없겠지?
기다려야겠지. 저분들이 제주도로 여행을 올 때까지.


떠나는 사람들은 마음이 번잡하다. 집을 정리하고, 짐을 싸고, 아이들의 학교를 챙기고, 직장에서 업무 인수인계에도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못 챙기는 일이 수두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제주에 남은 며칠 가운데 하루를 떼서 우리를 보러 와 준 것이다.
지난 가게를 그만두고 새 가게를 열 때까지 우리 부부가 그들에게 조금 더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건넸더라면 어쩌면 우리 네 사람은 서로 연락처를 나눠 갖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휴가철이면 언제 제주에 오는지 알려달라고 문자를 남기고 그에 대한 답장을 받게 될 수도 있었겠지. 우리는 이번에도 서둘러 와인을 한 병 꺼내고 그에게 안겼다. 두 번의 작별에 모두 와인을 건네다니. 갑작스러운 작별에 대처하기 위해서 좋은 것들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제주도에 산다는 건, 여러 가지 종류의 작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착하기 보다는 유목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제주를 들고 난다. 그러니까 제주는 새로운 만남과 작별과 재회가 무시로 일어나는 공간이다.


잘 가요. 잘 있어요. 또 와요. 그럼요, 또 올게요.


나는 지난 한 해 동안에 이런 인사를 세 번 나누었고, 한 번은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떠날 때는 도착지의 일정에 맞추어야 하는 여러 가지 사정들 때문에 서두르기 십상이고 그러다보면 인사를 누락하기도 쉽다. 떠난 뒤에나 생각나는 이름이 된다고 해서 서운해 할 일은 아니다. 나는 이곳에 그들보다 오래 남아있기로 한 사람이므로 작별하는 일에 옹졸해서는 안 된다.

곧 다시 돌아와 뜨겁게 재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작별을 뒤로 미루고 싶어진다. 내가 서울에서 제주로 떠나올 때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런 일도 생기는 거다. 내가 서울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내게 오는 작별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해지기로 하자. 다만 내가 누군가에게 해 두어야 할 작별이 있다면 그건 미루지 않는 게 좋겠다. 내게 두 번의 작별을 고했던 그들로부터 배운 한 가지는, 정성스럽고 따뜻한 작별을 할 때, 작별함으로써 비로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작별 뒤에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할지언정, 여전히 친구는 친구로 남는다. 나는 지금 (재회의 가능성이 낮은) 그 친구네를 떠올리는 중이다. 어쩌면 그들이 다음 여름이나 그 다음 겨울쯤에 저기 저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놀러 왔어요! 놀러 온다고 했잖아요!
그런 것을 기대하는 염치없는 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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