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

프롤로그

by 차차



책박스가 가득 쌓인 작은 방 안에 앉아 이 글을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노란 스탠드 조명 아래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일고 있는 변곡점에서 이 글을 엮습니다.


저는 김포의 오래된 동네에서 4년간 책방을 운영했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앞두고 있었으나 부득이하게 이사 갈 곳을 잃었고, 당시 북변동 서점은 다른 분에게 이미 넘긴 후였기에 저는 다음 행선지도 정하지 못한 채 이삿짐을 싸야 했지요. 그리고 책방의 짐은 고스란히 저의 작은 방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습게도 단 몇 개월 만에 책방이라는 실제의 공간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이 일시정지되었습니다. 바빴던 하루의 패턴이 거두어진 곳에는 적막이 남았지요.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오히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알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혼자서만 끄적여 온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있을까요. 목소리를 가다듬기에 좋은 순간이 우연처럼 찾아왔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여러분들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사랑에 관한 한 호기심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깊이 탐구해보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는 사랑 앞에서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지, 연약해졌다가 강해지기를 반복하는지. 사랑은 왜 우리를 처절하게 만드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을 쟁취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더 나은 모양의 사랑을 지속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아보고 싶었지요.



그 마음은 고스란히 책방에 녹아들어 4년간 저는 책방에서 책이라는 형태를 한 사랑의 언어를 팔아왔습니다. 사랑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에 맞는 책을 처방해주기도 하면서요.



하지만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는 불현듯 슬픔으로 흘렀습니다. 자신이 가진 슬픔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사랑에 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타인뿐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왜 나는 유독 스스로에게 엄격한지를 이야기하려면 어린 시절 내게 어떤 사랑의 기억이 있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질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습관적인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가진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연결이 되어있었지요. 사랑 앞에 있어서 내가 과도하게 희생적이거나 반대로 강압적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내가 과거에 겪은 어떠한 결핍이나 아픔으로부터 엮여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사랑을 보다 풍부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가진 슬픔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가지고 삽니다. 모두가 슬픔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타인에게 슬픔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합니다. 슬픔은 때때로 약점처럼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는 슬픔이란 모르는 사람처럼 비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슬픔이란 인간의 생애에 필수적으로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슬픔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자신의 슬픔을 깊게 헤아릴 줄 아는 인간일수록 타인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감각이 타인에게 닿으면 위로라는 말로 정의되곤 하지요. 책에 쓰인 위인들의 이야기가 절망에 빠진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자국을 남길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성공 뒤에 고달픈 노력과 저마다의 슬픔이 녹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슬픔, 불안, 두려움이라는 감정 앞에서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이야기는 특별해집니다.



저는 삶이라는 고통가운데 내가 가진 슬픔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나가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는 볕을 머금은 듯한 고운 시선으로, 누군가는 그늘지고 냉철한 감각으로 해석하지요. 각자가 가진 슬픔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냐에 따라 자기만의 고유의 이야기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능력이라고 믿고 있어요.



29살이 되던 해, 저는 어떤 하나의 슬픔을 겪으면서 제가 평생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책방을 열기로 결심했지요. 지난날의 슬픔은 의지와 영감이라는 물성으로 바뀌어 4년 동안 책방을 해나갈 수 있는 좋은 원동력이 되어줬습니다.



저는 슬픔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었고, 슬픔을 가진 손님들에게 쥐어주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 기민하게 감각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겪은 슬픔이 저만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 주었고 저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헤아리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없었다면 저는 제 삶에서 이렇게나 중요한 결정을 용기 내어 내릴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저희 솔직하고 슬픈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앞으로의 글은 솔직해서 슬픈 이야기입니다. 슬퍼서 웃을 수 있는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펼친 당신을 위해 저의 모든 문장을 내놓습니다. 저의 활자를 통해 조금이라도 당신이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비로소 자신의 아픔마저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