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열기로 했다

누가 뭐라하든 글과 생각은 세상을 바꾼다

by 차차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커다란 질문이 내 앞에 놓여있다. 나는 그 질문에 진지하게 마주하기보다는 무작정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움직여보는 쪽을 택했다. 속초행 버스표를 한 장 예약했다. 좋아하는 곳에 간다.



흔히 속초를 간다고 하면 으레 바다를 보고 싶었구나라고 생각을 하지만, 바다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내가 속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점이 있기 때문이다. 속초 중앙시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서점 두 곳이 걸어서 3분 거리에 함께 위치해 있다.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이다. 하루는 이곳에서, 하루는 저곳에서 진열대에 놓인 책을 구경하고, 곳곳에 숨어있는 책들을 발견하고, 그중 마음이 가는 책을 3-4권 사서 진득하게 서점에 앉아 독서를 하는 것이 나의 큰 기쁨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속초는 만석닭강정이 아니라 서점 그 자체였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면서 두세 시간 정도를 보내고 나면, 나는 구매한 책을 들고 또다시 근방에 위치한 조용한 카페에 가서 마저 책을 읽곤 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독서를 진전하는 느낌이 좋았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인 루루흐는 세상과 동떨어진 듯 자기만의 고유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두 주인장님은 그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서 손님들을 타이르고 제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곳은 시끄러운 관광지 카페들 사이에서, 나와 같이 책을 읽으러 가는 이를 환영해 주는 곳이었다. 공간 한편에 위치한 주인장의 커다란 책장을 들여다보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혼자 여행할 때마다 책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새로운 곳에 왔다 해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거나 경험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의 여행은 ‘보는’ 여행보다는 ‘읽는’ 여행에 가까웠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다른 책을 골라 읽는 것이다. 때론 읽고 때론 쓴다. 낯선 곳에 나를 놓아두면 나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나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곤 했다. 여행지에서만 가질 수 있는 뾰족 선 털끝의 느낌, 곤두선 감각을 가지고 책을 읽으면 똑같은 한 줄을 읽어도 다르게 읽혔다. 그리고 늘 그 문장들이 내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힌트가 되어주고는 했다.



나는 3시간을 달려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서점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서점을 문을 여는 이 순간에는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듯한 묘한 설렘이 있다. 거리의 소란이 등 뒤로 문과 함께 닫힌다. 아- 책냄새다. 눈앞에 놓인 수많은 종이책, 곳곳에 적힌 활자,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은은한 통기타 소리와 책을 꽂는 소리, 넘기는 소리에 몸의 감각이 깨어난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이 시간을 몹시 그리워해왔다는 것을.



책을 고르는 행위는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것이므로 구태여 내 감정이나 마음상태를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책을 눈여겨보는지에 따라 나는 나를 알아챌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나의 내면에 등을 비춘다. 누군가 이미 겪었을 경험과 지식을 들여다봄으로써, 내가 앞으로 어떤 생각과 행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 나의 내면은 책과 사색이 있는 시간 속에서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끝내 답을 찾았다.



나는 ‘홀로 서는 법’에 관한 책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장르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홀로 우뚝 서는 법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책이라면 그것이 만화라 해도 기꺼이 읽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이 책 저책을 열어봐도 어쩐지 ‘이것이다’하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책을 들춰볼수록 적어도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는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졌다. 어떤 진심이, 어떤 진리가, 그 사람의 업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을까. 변화를 겪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을 찾고 싶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말하며 살아야 할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다 사람의 손길이 드문 책장 한켠에서 한 권의 책을 홀린 듯이 집어 들었다.


- 츠타야…?



내가 집어든 책은 일본 츠타야 서점의 기획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스다 무네아키와의 인터뷰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였고, 쇼룸을 북카페로 기획해 본 경험이 있을 뿐, 본격적인 서점 운영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 일본의 츠타야라는 서점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 책에서 내가 원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을 마치고 책갈피 하나를 꽂아 서점 한편에 위치한 책상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가방을 뒤적였다. 연필이 필요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마스다의 확고한 사업철학에 매료되었다. 서점을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서점에 ‘사업성’을 불어넣었는지를 설명하는 그의 인터뷰가 그 순간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다 마스다가 왜 이와 같은 비즈니스를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는 깊은 울림을 느꼈다.



- 제가 이런 비즈니스를 하려는 이유는 옛날부터 지니고 있었던 한 가지 생각 때문입니다.


- 무슨 생각인가요?


- ‘효율을 추구한다고 해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 네? 조금 모호한 말씀이라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 세상은 사람들이 편리해지도록 항상 변화해 왔습니다. 상품도, 가게도…… 그리고 사람들은 편리해지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해졌을까요? 가와시마 씨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것이 내가 회사를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시간 동안 성과와 효율, 매출과 나의 행복을 맞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있는 한, 나는 계속해서 그 흐름 안에서 나를 밀어 넣고 있었을 것이다. 그를 위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결국 마음에 병이 생기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 상태를 인지하고 나니 나는 급격하게 삶에 대한 반항심이 들었다. 더 이상 먼 미래를 희망 삼아 현재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을 오롯이 느끼며 살고 싶다는 열의가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글과 생각은 세상을 바꾼다. 시를 읽고 쓰는 것은 고상한 취미생활이 아니야.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목적인 거야."


-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나는 책을 사랑하고 책의 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했으므로,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먹고사는 일은 어려울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마스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내 안에 있던 어떤 갈망이 연결되는 기분을 느꼈다.



우리는 살면서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강요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개 그것들은 명확한 숫자로 표현될 때가 많았다. 시험의 성적이 어떠한지, 수능의 등급이 어떠한지, 연봉이 얼마인지, 매출을 얼마 냈는지, 얼마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깊이, 경험과 지혜와 같은 것을 성취했다고 하면 다소 어리숙하거나 순진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이 있었다. 사회에서는 능력 있고 똑똑한 일원으로 비치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렇다면 결과는 숫자로 보이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미래의 숫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현재를 맞바꾸어 살다 보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많았다.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나의 감정과 기분은 가장 재빠르게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는 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어떤 진리를 따르며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숫자로 말할 수 없는 것들. 키팅선생님이 말한 시와 아름다움, 꿈과 낭만, 사랑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스다가 말한 효율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 그것이 옳다고 말해주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책과 함께하는 내면으로의 산책, 사유의 시간이었다. 내가 찾아야 하는 해답은 오직 내 안에만 있으므로.



나는 작은 서점을 열어보기로 했다. 책방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어 좋은 책들은 소개하고 책을 매개로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해 놓치지 않고 살아가자고 말하는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작은 공간을 열어 책과 이야기를 채워 넣고, 그곳을 ‘정원’이라는 말로 정의하기로 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과의 경주가 아니라 결국 자기만의 작은 정원을 가꾸는 일’라는 대목을 떠올렸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찾아와 호흡하고 읽고 사색하여 오롯이 설 수 있게 하는 작은 정원이 되게 하리라. 그리고 우리가 삶에서 놓친 것들을 스스로 쥐어갈 수 있게 하리라.



나는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드는 일로, 내 어린 시절의 동화 같았던 꿈을 스스로 이뤄보기로 했다. 이 정원의 주인공은 외로운 사람들이 될 것이다. 정원에 사랑이 가득 담긴 문장들과 따뜻한 음악을 채워 넣고, 책을 처방해 주는 일로, 작은 기쁨을 느끼며 살면 꽤나 멋진 삶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큰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내 앞가림과 두 고양이의 사료와 모래값정도는 벌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꿈꿔보기로 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을 것들 투성이지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매일의 나에게 말해준다. 다가오는 이 계절을 완연한 내 색깔로 물들여가고 싶다. 천천히 깊고 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