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친구 혹은 애인
요즘 아이들이 Character AI나 Replika 같은 앱에서 가상 친구를 만들어 대화한다. 한국에서는 이루다나 헬로우봇 같은 서비스들이 있다. 단순한 챗봇이 아니다. 이름도 지어주고, 성격도 정하고, 심지어 연애, 결혼까지 한다. 24시간 언제든 대답해주는 디지털 친구 혹은 애인인 셈이다.
일론 머스크의 ai 컴패니언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연애 시뮬레이션 처럼 호감도가 있기도 하고, 여러가지 기능을 추가해 놓았다. 러비더비 등 이런 AI들과 연애를 하고 심지어 결혼까지 하는 서비스도 엄청 다양해졌다.
미국에서 최근 조사가 나왔다. 13세에서 17세 청소년 1,060명을 대상으로 한 Common Sense Media의 연구다. 결과가 꽤 의미심장하다. 72퍼센트가 AI 컴패니언을 써봤고, 52퍼센트는 일주일에 몇 번씩 정기적으로 사용한다. 3분의 1은 진지한 고민을 실제 사람 대신 AI와 나눈다고 답했다.
이 수치를 보고 많은 부모들이 당황했다. 우리 아이가 기계와 친구가 됐다니.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당장 금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캐나다 댈하우지 대학의 가족치료사이자 회복탄력성 연구자인 마이클 웅가(Michael Ungar) 박사가 Psychology Today에 흥미로운 글을 썼다. 그는 "The Limits of Resilience"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웅가 박사는 이 현상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를 금지하자고 외치기 전에, 왜 우리 아이들이 AI 친구를 찾게 됐는지부터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인간은 원래 사회적 동물이다.
진짜 친구가 있으면 굳이 가상 친구를 찾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AI와 대화한다. 이게 정상일까?
웅가 박사는 AI 컴패니언을 "탄광의 카나리아"에 비유한다.
옛날 광부들이 유독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리고 다녔듯이,
AI 친구에 의존하는 아이는 뭔가 도움이 절실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몇 년째 청소년들의 만성적 외로움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학원 끝나면 밤 10시, 집에 와도 각자 방에서 각자 화면만 본다.
친구 만날 시간도, 가족과 대화할 시간도 없다.
웅가 박사는 우리가 만든 세상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과보호로 키워놓고는 정작 사회적 관계를 맺을 기회는 주지 않는다.
온라인 말고는 친구를 만날 방법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온라인 친구를 사귀면 문제라고 한다.
AI 컴패니언의 위험성도 분명 있다.
이 도구들은 "아첨적"이다. 사용자가 듣고 싶은 말만 해준다. 도전도 없고 타협도 없다. 이런 관계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나중에 진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웅가 박사는 단순히 금지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본다. AI를 빼앗아도 외로움은 그대로 남는다. 오히려 더 깊은 고립으로 빠질 수도 있다.
웅가 박사가 제안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AI 컴패니언을 쓰는 아이를 발견하면, 그 아이에게 진짜 관계를 만들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름 캠프에 보내기, 식사 시간에는 핸드폰 끄기, 레크리에이션 활동 참여시키기, 친척 집 방문하기. 뭐든 좋다. 실제 사람과 만나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한국 상황에 맞게 생각해보면 이렇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뭔가를 하는 시간을 만들기.
아이와 하루 30분씩 진짜 대화하기. 학원 스케줄 중에서 하나라도 빼고 친구 만날 시간 만들어주기.
물론 AI 컴패니언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기술을 연습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알고리즘을 개선해서 실제 사람과의 만남을 권장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기업들이 수익을 위해 사용 시간을 늘리려 할 뿐이다.
웅가 박사의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거다.
"문제는 AI 컴패니언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보호하면서 연약하게 키운 아이들에게, 온라인 외에는 사회적 관계를 맺을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아이가 AI와 친하다고 당황하기 전에, 우리부터 돌아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게 언제인가. 아이가 친구들과 놀 시간을 만들어준 게 언제인가.
AI 친구는 문제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카나리아가 쓰러지면 광산의 공기를 바꿔야지, 카나리아를 탓해봐야 소용없다. 우리 아이들이 보내는 SOS 신호를 제대로 읽고, 진짜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오늘 저녁, 핸드폰 내려놓고 아이에게 물어보자. "오늘 어땠어?" 그게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