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가만 보자. 3일 후면 술을 안 마신 지 4개월째다. (영겁의 세월이 흐른 것만 같은데, 고작 4개월이라니.) 술을 처음 입에 댄 스무 살 이후 이렇게 오랜 기간 금주를 한 것은 처음이다. 임신 중에도 막걸리 한 잔쯤은 마시고 살았는데…
술은, 뭐랄까. 나에게 김치 같은 것이다. 안 먹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일정 기간 섭취하지 못하면, 영혼까지 허전해지는.
그런 걸 소울푸드라고 하던가?
술과 동시에 이별한 소울푸드가 또 하나 있다. 떡볶이다. 떡볶이와 함께한 역사는 술보다 길다. 초등학교 때부터 마흔일곱이 된 지금까지 한 달 이상 떡볶이를 먹지 않았던 시기가 과연 있었던가.
술과 떡볶이를 안 먹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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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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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지 않아서다.
불과 3개월 28일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2022년 8월 30일.
그날 나는 떡볶이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라면 사리와 야끼 만두를 곁들인 즉석 떡볶이에 시원한 생맥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저녁에 걸맞는 최애 조합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명치끝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따뜻한 물을 조금 마시고, 소화를 돕는 요가 동작을 몇 가지 했다.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치밀었다. 어깨와 목에 묵직한 통증이 일고, 다리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먹은 것을 토해내도 개운치 않았다. 누우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었다.
급체를 했던 것 같다. 가족 없이 혼자 제주도에 와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라 손발을 주물러 줄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구토 증세는 좀 나아졌지만 두통과 어깨 통증, 무기력증은 계속됐다.
아플 때 재빨리 병원에 가서 원인을 파악하고 처방받은 약을 열심히 챙겨 먹는 등, 적극적으로 회복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러다 낫겠지 하고 병을 무시하며 통증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유형의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증상은 일주일 넘게 계속됐다. 급체를 넘어 급성 위염으로 추정됐다. 엄마는 왜 병원에 안 가고 병을 키우냐며 답답해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약은 증상을 일시적으로 가라앉힐 뿐 병의 원인을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라는 지론을 펼치며, 충분한 휴식을 핑계로 틈날 때마다 누워있었다.
모든 종류의 염증은 면역 기능이 떨어졌을 때 발생한다. 면역 기능은 언제 가장 떨어지는가? 몸과 마음이 힘들 때다. 몸과 마음은 왜 힘들어지는가. 불규칙한 생활,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이다.
그즈음 나는 잠이 부족했고, 물도 충분히 마시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안 받는 줄 알았는데.... 동시다발적으로 신경 쓰는 일이 많으니, 나도 모르게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나에게는 만성적인 위염의 흔적이 있다. 유전적으로 취약한 위장에 술과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식습관이 합쳐진 결과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닭볶음탕, 낙지볶음, 제육볶음, 양념치킨 등 자극적인 음식은 최대한 자제해왔다. 하지만 떡볶이는..... 떡볶이만큼은...... 놓기가 힘들었다.
8월 30일의 급성 위염 이후, 파블로프의 개처럼 떡볶이를 보면 속이 답답해진다. 어찌 이리 한순간에 정을 뗄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술도 작정을 하고 끊은 게 아니다. 그저, 다음 날 발생할 숙취와 피곤함이 떠올라 '굳이 이걸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시원하고 쌉쌀한 맥주의 맛과 풍미가 그리울 땐 무알코올 맥주를 마신다. 처음 무알코올 맥주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알코올도 없는걸 왜? 이런 걸 사 먹는 사람이 있다고? 왜? 도대체 왜?'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됐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다. 이러다가 언제 또 회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싶어질 수도 있고, 내일 죽더라도 오늘 떡볶이는 먹고야 말겠다고 외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씹지도 않고 떡볶이를 후루룩 넘기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나의 위는 예전 같지 않고, 몸의 모든 기능이 조금씩 조금씩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밤새 술을 마시고, 조폭 떡볶이로 해장하던 밤.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위를 혹사하던 시절.
그때가 까마득히 그립다.
- 쇠약하고, 고요한 리즈 -